이태원 참사 한달 "동생의 체취마저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요"

2022년 12월 07일 18시 00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11월 29일, 희생자 김이서(가명·25)씨의 언니가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그는 희생자 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통해 뉴스타파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전해 왔다. 
언니의 세계는 여전히 참사의 그날 밤에 머물러 있다. 그는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 달,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것은 망각이었다.  
동생의 부재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동생의 체취마저 사라지고 나면 정말로 더 이상 동생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까 봐, 그는 두렵다고 말했다. 생전에 동생과 함께한 친구들이 동생을 잊는 것도, 사람들이 더 이상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지 않게 되는 것도 무섭다. 동생의 장례식을 알리지 않으면 남들도 이 비극을 모른 채 동생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1시간 반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참사가 벌어진 그날 밤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복원했다. 자주 스스로를 탓했다.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워했고, 그때마다 인터뷰는 끊어졌다. 
희생자의 가족은 하루 같은 한 달을 보내고 있었다. 김이서씨의 언니는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줄어든 식사 시간 대신 병원 진료 시간이 늘었다. 수면 시간이 불규칙해졌고, 동굴 속에 숨어들 듯 집 안에 머물렀다. 1달의 시간을 꼬박 그렇게 보낸 언니가 다시 문밖으로 나와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부모님의 걱정 때문에 이름과 얼굴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있은 지 정확히 한달 후인 지난 11월 29일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25)씨의 언니가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2차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서 꺼렸어요. 그런데 다른 유가족 분들 한 분 한 분 만나 뵙고 나서 좀 용기가 생겼어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될 것 같아서 연락드리게 됐어요.”

“아흔 아홉 명이 추모하고 애도하고 응원을 해도 한 명이라도 내 자식욕하는 사람 있으면 못 참겠다, 동생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 같다는 부모님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겠더라고요. 익명으로나마 이렇게 나서야 다른 희생자 가족분들도 용기를 내 하고 싶은 말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잠옷 차림의 핼러윈

▲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씨. 
동생 김이서씨는 여느 20대 여자애들과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외모에 관심이 많고 친구가 많았다. 최근에는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는 참사 당일 아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전부터 약속이 있었어요. 자고 있던 동생을 깨워서 겉옷을 빌렸어요. 동생이 그때 막 눈 비비면서 일어나가지고, ‘어 알았어. 빌려 가’하던 게 기억나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언니가 그날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밤 10시 30분경.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앉았을 때 외출 중이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이서씨 친구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통화였다.  
이태원, 인파, 그리고 사라진 동생. 전화기 너머로 다급하게 전해지는 말들은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태원이 압사 사고로 난리가 났다는 말까지 듣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언니는 잠옷 차림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밤 11시 40분이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이태원 참사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압사, 심정지, 심폐소생술(CPR) 같은 낯선 단어가 어지럽게 흘러나왔다. 
엄마를 만난 언니는 그때부터 온 서울의 병원 응급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저 전화도 받지 못할 만큼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간 곳은 참사 장소 인근에 있는 순천향대 병원이었다. 병원 직원은 후송된 이태원 환자가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 가족은 오히려 안도했다. 아직 인근 병원에도 후송된 환자가 없다는 걸 보니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큰 사고는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일부 참사 희생자가 인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됐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급히 옮겨갔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벽이 있었다. 내가 가족이라고, 언니라고 말해도 후송된 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녀는 응급실 안내 데스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20대 여자가 있는지만 알려달라, 이런 옷 입은 사람이 있냐, 이런 신발 신은 사람이 있냐’ 동생 사진을 보여주면서 확인 요청을 드렸는데 대부분 확인해 주시지 않았어요. 어느 응급실 앞에서는 보안요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동생이 있는지 제발 확인 좀 해 달라고. 그래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하셨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벽에 막혀 모녀는 병원을 옮기고 또 옮겼다. 밤새 열 곳 가까운 병원을 돌았다. 모녀의 딱한 사정을 본 한 택시 기사가 이동을 도왔다. 한 병원에 머물러 있으려면 '이미 다녀간 병원에 동생이 있는데 제대로 확인을 못한 건 아닐까'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 이태원 참사 당일 故 김이서씨의 가족들이 찾아간 순천향대병원 응급실. 
동생을 찾은 건 엄마의 직감이었다. 20대 여성 3명이 후송됐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응급실 밖으로 나오는 경찰을 붙들었다. 후송된 사람 가운데 동생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있었다. 10월 30일 새벽 2시 반이었다.  
병원 간호사는 동생이 응급 중환자실에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가족은 안도했다. '중환자실에 있구나, 살았구나!'. 하지만 중환자실에서 만난 동생의 모습은 기대와 달랐다. 벌써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잠옷 차림의 언니는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처음에 가족은 장례식 연락을 돌리지 않으려 했다. 이서씨의 지인들이 생전의 밝은 모습만 기억하며 살아가길 바랐다. 그러다 친구를 너무나 좋아했던 동생을 생각해 생각을 바꿨다. 부고를 듣고 달려온 이서씨의 친구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족을 대신해 조문객을 맞고 빈소를 지켰다.
“처음에는 아무한테도 장례식 연락을 안 하려고 했었거든요. 사실 엄마랑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그냥 저희 동생 살아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자고…그래서 남들이 물어보면 잘 지내고 있다, 제 동생 잘 지내고 있다, 잘 살고 있다고 하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초대 받지 않은 문상객

빈소를 찾은 것은 김이서씨 가족과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례비 지원을 강조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다.
“서울시에서 나온 전담 공무원이라는 분이 첫날 저녁에 오셔서 계속 앉아 계셨어요. 저희가 ‘그냥 가도 된다. 가셔도 된다’고 했지만 그분이 ‘저희도 이게 일하는 거여서, 같이 있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 주시면 도와드리겠다’면서 가시지 않았어요." 

"저희는 다른 거 필요한 거 없으니까 다른 유가족들이랑 연락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본인들이 장례식장 파견 나오기 전에 절대 유가족 정보를 발설하지 말고 공유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이서씨 가족은 개인 정보를 줄 수 없다는 전담 공무원의 말을 이해했다. 다른 유가족들의 마음도 자신과 같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에게 다른 유가족들이 원한다면 자신의 연락처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취재진은 당시 이서씨의 장례식장을 담당했던 서울시 공무원에게 왜 다른 가족들과 연락처를 공유할 수 없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담당 업무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요청은 복지 부서나 유가족 지원 일대일 매칭 사업 관련 부서에서 주관하기 때문에 그쪽에 별도로 문의를 하시라고 안내를 해드린 겁니다. 

서울시 관계자(김이서씨 가족 담당)

유골함 '10·29'

김이서씨의 언니는 왜 그렇게 다른 희생자 가족을 만나고 싶었을까. 그는 동생의 죽음이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을 만나 참사의 진실을 더 알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생의 죽음을 추모했지만 그것만으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했다.
제 동생이 정말 피 한 방울도 무서워하는 애거든요. 위험한 곳도 안 가고 놀이 기구도 잘 안 타요, 워낙 겁이 많아서. 그런데 어떻게 길에서 사람들한테 깔려서 죽을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신고가 10건이 넘었다고 하잖아요. 압사를 당할 것 같으니 통제를 해 달라는 구체적인 신고를 한 분도 있었잖아요. 왜 4시간 동안 정부가 그걸 보고만 있었는지,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되니까 혹시나 현장에 계셨던 가족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많이들 찾아와 주시고 연락도 해 주셨지만 사실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거든요. 될 수가 없죠. 하지만 다른 유가족분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잖아요. 위로를 받고 싶었고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고, 무슨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국가는 유가족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민변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가족들을 만나게 된 김이서씨의 언니는 그때부터 더 많은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동생의 유골함이 안치된 경기도의 납골당에서 시작했다. 유골함의 날짜를 확인했다. 10월 29일이나 30일이 적힌 유골함을 13개 찾아냈다. 모두 다 동생처럼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었다. 유골함 주변에서 무작정 기다려 다른 유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매일 동생한테 가거든요. 납골당에 있는 유골함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고 다녔어요. 그 유골함에 사망 일자가 10월 29일이나 10월 30일이라고 적혀 있는 유골함을 찾았어요. 29일 30일 이런 날짜를 확인할 때마다도 너무 가슴이 뛰고 아팠어요. 동생이 있는 납골당에만 13분이 계셨어요."

"유골함 앞에서 울고 계신 어머니분을 봤거든요. 연락처를 교환하고 지금도 연락하고 있어요. 가족분들이랑도 연결시켜 드렸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 봉안당에 안치된 故 김이서씨의 유골함. 
김이서씨의 언니는 최근 논란이 된 언론사 ‘민들레’의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희생자들의 유가족을 찾을 때 도움이 됐다. 정부가 외면하는 동안 유가족들은 직접 발로 뛰었다. 김이서씨 언니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12월 6일 기준 총 아흔 명의 희생자 가족 160여 명이 모여 유가족협의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면

김이서씨의 언니는 취직을 하면 가족들 모두에게 근사한 가방을 선물하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이미 선물을 했고, 이제는 동생의 차례였다고 말했다. 어린 동생을 챙길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있을 때 잘 하라'라는 세상의 말은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다. 그는 참사의 순간 동생과 함께하고 지키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탓했다. 이서씨의 언니는 망각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시간이 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잘 안 나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진짜 이제 동생이 없구나, 이런 걸 느낄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요. 저는 그냥 지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렇게 실감이 나지 않을 때 동생이랑 함께 있는 것 같거든요. 아직은 집에 가면 동생 체취나 온기가 남아 있어요. 이런 것들이 다 날아가 버릴까 봐 너무 무서워요. 동생 친구들한테 동생이 잊힐까 봐 무섭고, 사람들한테 이 사건이, 이 참사가 잊힐까 봐 두렵고. 저는 그냥 지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날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왼쪽)씨와 언니 
단체 채팅방에 모인 가족들의 대화 대부분은 하소연과 위로였다. 황망한 밤, 직접 발로 뛰어가며 가족의 행방을 찾아야 했던 가족의 고통은 다른 곳에서는 풀어낼 수 없는 하소연이었다. 이서씨의 언니는 아직 상실의 슬픔을 공유하기가 무서운 다른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마음 정말 공감하거든요. 저희도 장례식 때 아무도 안 부르려고 했었으니까요. 아무한테도 알리기 싫고 동굴 속에만 숨고 싶고, 다 포기 하고 싶고, 아무 말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고. 그 마음을 정말 절실히 알아요. 그래도 지금은 슬픔이나 아픔은 잠시 접어두고 희생자분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모여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가족분들을 많이 뵙는 게 정말 힘이 되거든요. 힘드시더라도 꼭 용기 잃지 마시고 연락 주시고, 그 슬픔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에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 김이서(가명)의 언니
유가족들은 지난 11월 21일부터 영정과 위패를 안치하고 유족들이 모일 수 있는 추모공간 마련을 정부에 요청했다. 희생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하겠다던 정부와 여당은 12월 7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유가족들은 오는 12월 16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놓고 49재를 지낼 계획이다. 행사 시작 시간은 참사 당일 첫 번째 112 신고가 있었던 오후 6시 34분으로 정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메일 : itaewon1029official@gmail.com
인스타그램 : @10.29_itaewon_official
제작진
촬영신영철 이상찬
편집윤석민
타이틀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