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소송] 600조 국가 예산의 ‘보이지 않는 손’을 공개하라

2022년 05월 31일 10시 00분

▲ 2022년 4월 23일, 추경호 장관(당시 후보자)의 집 앞에서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이동권·탈시설 권리 보장과 장애인 권리 예산을 약속해달라는 장애인들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장애인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재부 장관의 집 앞에 장애인들이 왜 모였을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아무리 (장애인 담당) 부처가 (장애인 예산을) 편성해도, 기재부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부 출신 인사들의 전성시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기획재정부(MOF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인 ‘모피아’가 자주 언급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부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등이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일반 부처의 차관까지 기재부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 

기재부와 기재부 관료들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뉴스타파는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정부 예산 감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재부가 정부 부처로부터 ‘예산요구서’를 제출받아 검토하고 배분하는 업무에 주목했다. 오늘(5월 31일)이 모든 정부 부처가 차기 년도(2023년) 예산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하는 법정 마감 시한이다. 
국가 예산의 확정은 대략 3단계로 이뤄진다. ① 먼저, 정부 부처별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산요구서’를 만들고 매년 5월 31일까지 기재부에 제출한다. ② 기재부는 부처가 보낸 예산요구서를 검토하고 조정해 정부 예산안을 만들어 매년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③ 국회는 기재부가 보낸 정부 예산안을 놓고 매년 연말까지 심의·본희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 
지난해 9월, 기재부가 국회에 보낸 2022년 정부 예산안은 604조 원이었고,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을 거쳐 607조 원으로 확정됐다. 이때,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정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해 기재부에 제출하는 부처별·지자체별 예산요구서는 국가 예산의 ‘초초안’에 해당한다. 이 예산요구서에는 중앙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청사진이 반영돼 있다. 
지금까지 예산 감시는 주로 세 번째 단계, 기재부에서 조정한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서 어떻게 재조정하고 재배분·의결하는지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 , ‘쪽지 예산’ 등이 지적됐다. 
이러한 예산 감시 활동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 바로 첫 번째에서 두 번째 단계의 감시이다. 정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제출한 예산요구서가 기재부에서 어떻게 검토되고 반영되고 있는가이다. 예산요구서에는 중앙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청사진이 들어있다. 

부처별 예산요구서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어

하지만 기재부가 매해 9월 3일 정부 예산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할 때까지, 기재부 안에서 부처별 예산을 어떻게 조정·편성하는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부처별 예산요구서 원안이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재부가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며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이야기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예산도 기재부의 검토와 조정을 거친 뒤에야 정부 예산안으로 확정되기에 장애인 단체들은 복지부 장관이 아닌 기재부 장관 집 앞에서 예산 반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정부 예산안을 짜는 중대한 공적 임무를 기재부 내 소수 엘리트에게 맡겨도 괜찮은 걸까? 기재부 중심의 폐쇄적인 예산 편성 방식에는 문제가 없을까. 장애인 시설 확충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사업에는 제대로 예산이 배분되고 있을까. 

국가 예산의 시민 감시, 예산 감시의 민주화... 가능할까

▲ 5월 17일, 기획재정부가 보낸 정보공개 관련 비공개 결정 통지서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지난 5월 2일 기재부를 상대로 5개 부처가 기재부에 제출한 2022년 예산요구서를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예산요구서 공개를 요청한 5개 부처는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다. 
하지만 기재부는 5월 17일 관련 정보의 공개를 거부했다. 기재부는 “(공개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비공개 이유를 댔다. 그러나 이미 정부 예산안이 확정돼 사업이 집행 중이기에 정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명목으로 비공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재부는 또 부처별 예산요구서는 “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21년 검토 자료로서 정부의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내놨다. 그러면서 “(예산요구서는 각 부처에서) 생산한 자료이므로 정보공개에 대한 결정도 해당 부처에서 최종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산요구서가 공식적인 자료가 아니라서 줄 수 없다는 기재부의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각 부처가 기재부에 제출하는 예산요구서는 국가재정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작성되고, 각 부처 장·차관의 결재를 거쳐 생산되는 정부 공식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시민단체, 기재부 상대로 5개 부처 예산요구서 공개 소송 최초 제기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오늘(5월 31일), 이 같은 기재부의 비공개 결정에 맞서 5개 부처의 예산요구서를 공개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기재부를 상대로 정부 부처의 예산요구서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낸 것은 이번이 최초이다.  
이번 행정소송은 기재부 모피아 힘의 원천인 정부 예산 편성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공개함으로써 예산 편성 감시 활동에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예산 민주화 프로젝트"인 것이다.  
이번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하승수 변호사(뉴스타파 전문위원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번 프로젝트 배경과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시민사회단체들이 예산과 관련해서 정부 부처들을 접촉해보면, ‘이건 기획재정부가 반대해서 안 된다’, ‘이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만큼 기획재정부의 예산권력이 강하다는 것인데요. 선출된 집단도 아닌 관료집단이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민의 감시가 필요한데, 그 첫 단계가 정보공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예산요구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요구서가 공개되면, 그 내용을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안과 비교해볼 수 있고,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예산과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낭비적인 부분이나 잘못된 의사결정 등이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예산 편성 과정에 국민들의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는 대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하승수 변호사 (뉴스타파 전문위원 /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기재부를 상대로 한 ‘예산요구서’ 공개 행정소송은 2017년∼2020년, 3년간 진행한 “국회 세금도둑 추적” 등 국회 예산 감시와 2019년부터 계속 진행 중인 검찰 특수활동비 등 예산 소송을 잇는 세 번째 ‘공직 감시를 위한 시민단체 협업프로젝트’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이번 행정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기재로부터 정부 5개 부처 예산요구서를 받아내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
제작진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취재강민수 임선응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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