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국회도 ‘설명책임’ 의무가 있다

기록은 행위를 증명하는 유력하고 유일한 도구

국가는 시민에 대해 설명책임(accountability)의 의무가 있다. 설명책임은 시민에게 업무 또는 행정 수행의 전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투명성(transparency)의 정 도와 더불어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국가가 설명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설명책임의 도구는 기록이다. 기록은 행위를 증명하는 가장 유력하고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정보공개법(1996.12. 제정), 공공기록물법(1999.1. 제정), 대통 령기록물법(2007.4. 제정), 교육기관정보공개법(2007.5. 제정), 원자력안전소통법(2021.6 제정) 등 공공기록관리와 정보공개 제도가 성립하고 발전해 왔다. 
이런 법·제도의 틀에서 정부의 설명책임이 실현되고 있고, 국회도 이에 해당하는 규칙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물론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고 설명책임의 실현이 완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 법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제도의 취지에 벗어난 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최근 검찰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 공개를 보면 우리의 설명책임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정부의 설명 책임 수준 드러낸 검찰의 예산 집행 내역

그런데 국회의원은 기록으로 설명책임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최근 검찰의 행태보다 더 형편없다. 법률적으로 국회의원은 아예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공기록물법은 법 적용의 대상을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법령으로 정한 기관 등으로 하고 있다. 국가가 적용 대상이니 국회의원 각각이 국가기관이므로 당연히 공공기록물법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을 규정한 ‘국회기록물관리규칙’은 오히려 국회의원과 실제 의정활동이 이뤄지는 국회의원실은 제외하고 있다. 
이렇듯 국회는 설명책임의 의무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한참 빗겨나 있다. 정부는 공공기록물법은 물론 정권의 기록이라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법을 만들어 제도적으로는 설명책임의 틀을 갖추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의정활동기록은 여전히 사각 지대에 있다. 물론 국회도서관법에 국회도서관의 직무로 ‘국회 의정활동 관련 기록물의 수집·정리·보존·평가· 활용’이 정해져 있어 국회의원의 기록을 수집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실의 기록을 관리 절차에 따라 국회 기록관리기관에 이관하는 것이 아니어서 실효적인 성과를 만들 어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보다 못한 국회의 설명 책임

국회박물관도 의정기록을 수집하고 있지만 의정활동 산출물보다는 국회의원 개인기록이나 국회 역사자료 위주로 수집하고 있다. 이렇듯 그나마 갖추어진 제도로는 국회 의원의 의정활동의 증거로서 기록을 통한 설명책임 실현은 어려운 현실이다. 국회 의정기록은 의장단을 포함한 국회의원 의정활동 기록과 정당의 기록을 말한다(정당기록은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2022년 말 현재 국회기록보존소가 보유·관리하고 있는 국회 의정 기록은 약 10만여 건 정도이다. 그중 상당 부분은 국회기록보존소에서 국회의원실이나 국회의원 개인에게 기증받았거나, 국회의장단의 구술채록 기록들이다. 그 외에 국회사무처에서 자동으로 이관되는 국회의원실 기록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휴가원이나 인사명령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국회의원 일부가 기록 기증을 약정하였으나 소수에 불과하다. 기존에 국회의원실에서 기증한 기록 중에서도 의정활동의 증거가 될만한 정책자료는 많지 않다.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입법, 예·결산, 국정 감·조사, 지역구 관리 등의 기능에서 발생한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중에는 국회사무처 등 국회의 소속기관에서 생산하여 국회기록보존소로 이관되는 것들이 있고, 의원실에서 공식적으로 업무와 관련하여 생 산·접수한 기록이 있다. 예컨대 입법과 관련한 기록 중 자료제출요구, 법률안 입안 의뢰, 법률안 발의서 및 발의 서명부, 비용추계서 등은 공공기록으로 생산·관리된다. 그러나 안건 수집 및 분석 자료, 입안기획 및 검토 자료, 지역구 활동 자료, 홍보자료 등은 의원실에서 자체 관리하다가 없어진다. 
이렇게 국회의원실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다가 소실되거나, 이해당사자들에게 흩어짐으로써 의정활동의 전체 맥락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소속기관을 통해 행정적으로 처리된 것들만 관리된다. 심지어 의정자료유통시스템처럼 행정부랑 국회의원이랑 주고받는 기록들조차 이관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실 기록 대부분 사라져

국회의 소속기관을 통해 관리된 기록만으로는 국회의원의 설명책임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 는다. 시민들에게 어떤 사안과 관련되어 체계적으로 구성된 맥락의 기록이 전달될 때만 신뢰를 담보한 설명책임이 실현된다. 설명책임은 문서 한 장(text) 아니라 논리적이고 절차적인 기록의 맥락이 갖추어진 것(Context)이어야 완성된다. 국회의원(실) 의정활동기록의 수집과 관리, 그리고 서비스를 본격화하려면 먼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기존의 법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는 방법 모두를 고민해 볼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입법은 그 필요성이나 내용 등을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논의만 풍성하고 입법이라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의 법에 반영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인데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국회법을 손보는 것이다. 국회도서관법에 반영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나, 의정기록 관리는 국회기록관리의 특수성·민감성 측면에서 국회의장의 역할이 필요한 만큼 국회에서 기본법 역할을 하는 국회법에 규정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법령에 반영한다면 의정활동기록의 개념과 정의, 수집과 관리 그리고 공개와 서비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의정활동 기록 중 국회의원실에서 발생하는 관리 대상 기록을 명확 하게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정치인이어서 정치활동에 따른 기록도 생산된다. 
일반적으로 정치 활동과 관련한 기록은 개인기록으로 분류한다. 대통령기록물법에서 개인기록을 “대통령의 사적인 일기ㆍ일지 또는 개인의 정치활동과 관련된 기록물 등으로서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되지 아니하거나 그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대통령의 사적인 기록물”이라고 하여 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법률 제2조 제5호). 
국회의원실에서 생산되는 기록 중 의정활동의 증거로서 반드시 관리해야 할 것과 정치활동과 관련한 개인기록의 분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관리 대상 기록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형해화 될 가능성이 크므로 매우 정교하게 관리 대상 기록을 정해야 한다. 
또 실제로 국회의원(실)의 의정활동기록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국회의원실은 의원 당선과 함께 구성돼 임기 종료 시 폐지되는 한시 조직의 성격과 국회의원실 내 보좌직원의 잦은 교체로 인해 체계적인 기록관리 수행하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따라서 국회기록보존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 신뢰도 최하위, 근본 대책 필요

국회의원(실) 기록관리는 “제도로 정해놓았으 니 당연히 이관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는 결코 성과를 낼 수 없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의 신뢰도는 2022년 현재 24.1%로 최하위 수준이다. 민관 대상 16개 집단의 평균이 52.8%이고, 정부 부처가 50.0%이며, 바로 위가 45.1%의 검찰이니 국회의 신뢰도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낮은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받아든 성적표가 아니다. 지난 10년간 국회는 언제나 꼴찌였고, 심지어 10%대 신뢰도였던 때도 있었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특별히 뭘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스스로 정치혐오를 유발하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물론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제도적 자구책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신뢰도가 상승하지는 않았다. 
국회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다. 위의 국회선진화법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설명책임의 도구와 방법을 모두 끌어모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의 하나로 국회의원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적절하게 시민에게 돌려주는 ‘결단’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의정활동 기록 관리 체계 마련 시급

내년 4월 국회의원선거가 끝나면 낙선한 의원들은 짐을 싼다. 현 20대 국회 초선의원이 약 50.3%이고 평균적으로 40%가 넘었으니 그만큼 의원실을 비워야 한다. 이때 많은 기록과 자료 들이 쓰레기장으로 가서 소각된다. 이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이라는 국가기관이 4년 동안 국민의 세금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사라지는 일이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4년마다 벌어지는 국회의원실 기록폐기의 실상이 또 일어난다. 당장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회법을 개정하든 특별법이라도 만들든 국회의원 의정활동 기록관리를 위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의 말과 행동은 내년 총선에 맞춰져 있다. 그 말과 행동을 총선이라는 정치이벤트에 맞춰서 생각하면 모두 이해되는, 말 그대로 정치의 시절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인지는 성찰이 필요하다. 
매번 국회의원 총선이 치러지는 때에 국회가 활동을 잘했느니 마느니 따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문제제기만 반복된다. 이것은 우리의 정치가 본질을 쳐다보지 않고 현상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국회와 국회의원이 시민에게 설명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을 잘했느냐 아니냐로 선거의 결과가 되는 것. 그것이 정치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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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