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마’

2014년 09월 24일 18시 00분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뉴스로 선택되어지는 건 단 몇 가지뿐이다. 이 선택은 ‘언론’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언론의 역할 혹은 권한을 ‘의제 설정’(아젠다 세팅)이라고 부른다.

의제 설정 (아젠다 세팅)

미디어가 특정 이슈들을 강조, 부각시킴으로써 수용자들로 하여금 그 이슈들을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효과 또는 기능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대상의 상당수가 언론이 의제로 설정한 것이고, 자신은 거기에 대해 그저 나름의 의견을 덧붙이고 있는 수준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직접 찾아가서 보거나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언론에 상당히 많이 기댈 수밖에 없는데 다소 비약하면, 언론이 의제로 설정하면 우리는 그에 대해 생각하고 언론이 의제로 설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식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언론의 이러한 의제 설정 권력(?)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주요 종합편성 채널과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특정 대상에 매우 강력한 의제 설정을 시도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유병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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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보니 심지어 유병언이 입은 팬티가 명품이었다거나, 유병언의 아들 유대균이 치킨을 시켰는지 아닌 지와 같은 사건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선정적 가십들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된다.

반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 줄 수 있었던 국조특위 기관보고에 대해 이들 언론이 보여주는 태도는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보수언론 중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알려진 조선일보의 경우 국조특위 기간 동안 관련 기사가 총 7건에 그쳐, 다섯 개 주요 일간지 중 가장 적었다. 게다가 그 기사들도 5면 이내엔 단 한 번도 넣지 않았다.

7월 2일 세월호 침몰 당시‘청와대-해경 핫라인’ 녹취록이 공개되었을 때 역시 조선일보는 단 한 건의 기사도 싣지 않았고, 7월 25일 유가족 측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과 세월호 연관성 제기했으나 TV조선, 동아일보, 채널A는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보고서,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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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측이 제기한, 국정원과 세월호 연관성에 관한 언론보도(출처 :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 보고서)

이는 세월호 참사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대상들은 보도에서 누락하고, 대신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유병언이라는 인물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매우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의제 설정’ 행위를 한 셈이다. 유병언 이후에도 이들 언론들은 대통령의 눈물을 강조하고, 유가족들이 누릴 특권을 강조하고, 경제가 어렵다고 강조하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누가 책임이 있을까?’라는 사람들의 상식적 궁금증을 끊임없이 다른 쪽으로 돌리려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세월호 피로증’이란 의제에까지 이르러 마치 세월호에 대한 책임이 해경을 비롯한 정부에 있는 게 아니라 세월호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에 진정으로 애도하던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말만 나와도 진저리를 치는 지경” -9월 10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들 언론의 이러한 노력은 결국 세월호 참사의 책임 문제를 희석시켰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이 앞 다퉈 ‘세월호 피로증’이란 의제를 주저 없이 인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얘기하는 분들은 나에게 ‘이제 그만’이라고 하더라." - 정용기,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제 피로감 수준에서 불만으로까지 번졌다.” -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 경기 안산 단원

8월 15일 유가족들의 행진을 촬영하면서 우연히 목을 길게 빼고 유가족들을 열심히 지켜보는 한 여학생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게 됐다. 뭔가 놀란 듯 갈피를 못 잡는 여학생의 얼굴 표정은 언론의 의제설정을 통해서 받아들인 ‘머릿속 세상’과, 그녀의 눈앞에 놓인 ‘진짜 세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이러한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일까? 혹은 언론이 현실이라고 말해준 걸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일까? 머릿속 세상일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란 게 과연 머릿속 세상과 별도로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정치적으로 다루어야만 하는 세계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사람들의 마음 밖에 있다

- 정치평론가 월터 리프먼 저서 <여론>, ‘바깥세계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그 세계의 이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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