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정 의원은 왜 삼성 이 전무에게 사과했을까

2020년 11월 04일 17시 14분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기술유출 누명을 쓴 삼성전자 이 전무 사건을 언급했다. 자신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고민정 의원은 이 전무 사건을 '기술 유출 시도가 있었지만 법령 미비로 처벌받지 않은 사건'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미 무죄가 난 사건의 본질을 뒤집어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이다.
지난 10월 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민정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고민정 의원 : 장관님, 국가핵심기술의 중요성을 잘 아시죠?

성윤모 장관 : 네

고민정 의원 : 만약에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됐을 때 어느 정도의 파급이 대한민국 경제에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윤모 장관 : 기술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마는 저희 반도체 산업이라든지 주요 산업에서의 핵심기술이라고 한다면 저희 경제에 커다란 영향까지도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정 의원: 맞습니다. 그 반도체 산업에서 유출되었던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016년 5월부터 7월까지 삼성전자의 어떤 임원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되는 47개의 자료를 유출했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있었고, 당시의 검찰 공소장, 1심 재판부 판결을 보면 그 사람은 이직 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차량을 이용해서 3회에 걸쳐서 이 47개의 자료를 유출했다라고 적시가 돼있고요. 집에 보관하는 행위가 유출에 해당하느냐. 왜냐면 집에 있는 것을 가지고 유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도한 거 아니냐는 해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근데 그 이제 판결문을 보면 또  유출이라고 적시하고 있고요, 또 그 유출자료가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판부도 유출은 맞다라는 건 인정한 셈인데, 근데 결과적으로 2018년 7월의 대법원 결과는 무죄판결이 났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성윤모 장관 : 아마 이게...

고민정 의원 : 그 이유가 바로 고의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부정한 목적이 입증되지 않기 때문에 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기업에 있는 자산을 돈을 내 집에 갖다놨습니다. 그러나 근데 그걸 부정하게 쓰지는 않고 일단 내 집에 갖다놨습니다. 근데 그거는 부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런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랑 똑같습니다. 앞서도 국가기술이 유출되는 게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장관께서는 잘 아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성공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으니 망정이지 만약에 그 기술들이 이 47개 자료들이 어딘가로 유출됐다면 예를 들어 중국으로 유출됐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다고,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윤모 장관 : 저희 산업경쟁력에 영향을 미쳤을 거다, 라고생각합니다.

고민정 의원 : 그렇습니다. 아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실제로 이 기술은요, 갤럭시 S6,7,8과 노트5,7에도 적용된 기술입니다...(중략)...그래서 본 의원은 유출방지법에 대한 법안을 발의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20.10.7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중
▲ 고민정 의원이 10월 7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민정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언급한 기술 유출 사건은 뉴스타파가 지난 2018년 5월 17일 보도한 삼성전자 이 모 전무 사건이다. (관련 기사 : 기술유출 누명... 삼성 이 전무의 '달콤한 인생'

판결 취지 왜곡한 발언

뉴스타파는 2018년 5월 기사에서, 이 전무가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 자료를 중국으로 팔아넘기려 했다는 언론 보도가 거짓이며, 다른 업체로 이직을 하려고 했다는 검찰의 공소 내용도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또 이 전무가 출력해 집으로 가져간 문서는 모두 이 전무 본인에게 온 이메일의 첨부 문서를 집에 가져가 검토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당시 삼성전자의 관행상 임원에 대해서는 보안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정적으로 삼성전자의 임원들은 회사가 제공한 원격 업무시스템을 통해 회사 밖 어디서든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 기술 자료를 조회할 수 있기 때문에 자료 유출을 마음먹었더라면 굳이 서류를 직접 들고 나올 필요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원은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기술 유출 혐의에 대해 1심부터 3심까지 모두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 이 전무 사건 당시 삼성전자 임원들이 사용하던 원격업무시스템. 이 전무가 기술 유출을 마음 먹었더라면 굳이 서류를 출력해 들고 나오는 방법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 접속해 기술자료를 촬영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민정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검찰 공소장과 1심 판결을 보면 이직 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료를 유출했다고 적시돼 있다”고 못박아 말했다. 그러나 고 의원이 이같은 발언은 실제 법원 판결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뉴스타파가 다시 한 번 이 전무 사건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판결문 어디에도, 이 전무가 "이직 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료를 유출했다”는 고민정 의원의 발언과 부합하는 부분이 없었다. 가장 근접한 표현은 판결문 11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이직에 유리하게 사용할 목적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해 회사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의사를 가지고 이 사건 기술 자료를 유출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열하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피고인이 부정한 목적이나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가지고 이 사건 반출행위를 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11쪽)

부재 중의 직장 일이 염려되어 동료나 부하직원들에게 연락하여 챙기고 지시하거나… 틈나는 대로 들여다볼 생각으로 일거리를 집으로 싸 갈 수도 있다고 보인다. (12쪽)

피고인이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자료가 이직을 위해서 제3자에게 건네졌다는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13쪽)

피고인이 사무실에서 출력한 자료를 집에 갖다 놓고 메모하면서 공부하고 필요없게 된 자료를 문서파쇄기로 폐기하는 행위는 2009년경부터 시작되어 2016년 7월 적발 당시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온 점에 비추어 이것이 반드시 이직에 사용할 목적으로 행해졌다고는 보기 어렵다. (13쪽)

피해회사의 보안검색은 규정과 달리 실제로는 임원용 차량의 출입에 대하여는 예우 차원에서 검색을 완하하여 시행했다고 보여, 피고인은 별다른 검색이나 제한 없이 일상적으로 필요한 자료를 반출해 온 것일 뿐, 특별히 악의를 가지고 교활한 수법으로 보안검색을 무력화시켰다고 보이지 않는다. (14쪽)

피고인의 보안의식이 미비하여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사건 반출행위를 하였다는 것과 피고인이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자료를 반출하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15쪽)

삼성전자 이OO 전무 기술 유출 사건 1심 판결문 중
즉 법원은 이 전무가 “이직 시 사용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기술 자료를 유출했다”는 검찰의 공소내용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 내용과 1심 판결이 전혀 상반되는 상황인데도 고민정 의원은 검찰의 공소내용만을 강조해 인용하며 법원도 공소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취지로 잘못 발언한 셈이다.

회사 돈을 집에 가져간 것과 똑같다?

고민정 의원의 다음과 같은 발언도 문제다.
(무죄 판결의) 이유가 바로 고의성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부정한 목적이 입증되지 않기 때문에 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기업에 있는 자산을 돈을 내 집에 갖다놨습니다. 그러나 근데 그걸 부정하게 쓰지는 않고 일단 내 집에 갖다놨습니다. 근데 그거는 부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런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랑 똑같습니다.

2020.10.7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 감사 중 고민정 의원 발언
고민정 의원은 위 발언에서 이 전무가 무죄를 받은 것이 “기업에 있는 돈을 내 집에 갖다놨는데, 부정하게 쓰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경우는 매우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 전무가 출력해 집으로 가지고 온 자료들은 단순히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업무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자산인 어떤 장비를 수리해야 하는 업무를 맡은 직원이, 수리를 마치기 위해 장비를 집으로 가져왔다면, 그리고 수리를 마친 뒤 장비를 고스란히 회사에 가져다 놓았다면 이 직원은 처벌을 받아야할까? (이 전무의 경우 7년 동안 회사의 자료를 집에 가져가 업무를 보면서도 업무를 보고난 뒤 자료를 모두 파쇄해왔다.)
즉, 업무의 대상이 되는 회사의 자산을 집으로 가져간 유출 사건에서는 실제로 그 업무를 했는지, 그리고 업무가 끝난 뒤 회사 자산을 어떻게 처리했는지가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적인 관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전무 사건에서는 이 전무가 유출한 문서를 어디에도 전달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 전무가 헤드헌터와 접촉한 게 기술 유출의 의사를 보여준 것이라고 몰아붙였지만 정작 이 전무가 헤드헌터와의 대질심문을 요청하자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따라서 고민정 의원의 발언은 부적절한 예를 들어 사건의 핵심을 호도한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기술 유출을 시도했던 임원이 관련 법의 미비로 처벌을 피해나간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기 조직에 충성했던 임원에게 기술 유출 누명을 씌웠고 검찰과 언론이 이에 협조한 것”이다.

숟가락 얹은 박주민…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박주민 의원은 고의원의 국정감사 발언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고민정 의원의 발언과 법안을 지지했다.
지난 2016년 삼성전자의 핵심기술 47건이 유출된 사건이 있었는데, 관련 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정황은 의심이 가지만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술 유출 범죄는 구조적으로 고의성과 부정한 목적의 입증이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황이 있더라도 유죄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2020.10.8 박주민 의원실 페이스북 게시글 중
그런데 박주민 의원은 지난 2018년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이 전무 사건에 대한 질의를 했다. (관련 영상 : 박주민 의원,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 삼성 이 전무 사건 질의)
기술을 유출할 회사에 이직을 하기 위해서 헤드헌터를 만났다, 이런 것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 전무가 그럼 그 헤드헌터를 조사해달라, 나는 결백하니까, 라고 했는데 묵살 당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삼성 임원의 경우에는 회사 밖에서도 회사 업무시스템에 접속해서 여러 서류들을 볼 수 있는데 지금 이 사람이 빼돌렸다는 서류들이 그 시스템에 접속하면 볼 수 있는 서류였다는 거예요….(중략).... 바보 같이 누가 그걸 종이로 출력해서 들고나가겠느냐 했는데 묵살당했다는 거예요...(중략)...이런 식으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나는 정말 억울하다, 이건 수사해달라고 하면 그건 수사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사안이 벌어졌을 때 해당 검사를 징계하는 것도 굉장히 큰 시그널이 될 수 있고 검사들의 조직문화나 업무태도에 대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2018.10.12 법사위 국정감사 중 박주민 의원 발언
2018년 국정감사에서는 이 사건의 처리가 검사의 객관 의무를 위반한 것이어서 검사를 징계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주장했던 박주민 의원이 2년 뒤에는 “정황이 있지만 유죄가 나오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이 전무 방지법’이 아니라 ‘반올림 방지법’? 

고민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 전무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자신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삼성전자 기술유출 방지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현행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이다. 지난 10월 13일 발의된 이 법안의 골자는, 첫째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대상기관들이 보안전담 조직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것, 둘째 적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한 경우라도 해당 기관의 동의 없이 사용 내지는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보안전담 조직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 내용에 대해서는 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부분이다. 이 전무의 경우 자료를 집으로 가져간 사실이 분명한데도 처벌하지 못했으니 처벌을 강화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법안이 개정되면 이 전무와 같은 경우가 처벌되는 것일까? 
개정 법안의 조문은 이렇다.
제14조. 누구든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 1. (현행과 같음)1의 2  적법한 방법으로 대상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한 후 대상기관의 동의없이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

고민정 의원 대표 발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중
기존에는 적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하기만 하면 이를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고민정 의원의 개정안은 적법한 방법으로 취득했다 하더라도 대상 기관 (이 전무 사건의 경우 삼성)의 동의 없이 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면 금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무 사건에서, “대상 기관의 동의없이 그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했느냐”는 전혀 쟁점이 되지 않았다. 이 전무는 출력한 자료를 집으로 가져간 뒤 파쇄하거나 그냥 집에 보관해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 전무 사건의 유무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자료를 취득하는 것은 현행 법으로도 처벌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즉, 고민정 의원이 자신의 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든 이 전무 사건 사례는 법원의 판결 취지를 왜곡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들어맞는 사례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법안에 들어맞는 사례는 무엇일까? 얼른 떠올릴 수 있는 건, 삼성 반도체에서 발생한 직업병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삼성의 반도체 제조 공정에 쓰이는 화학물질 정보를 요구해 받아냈던 인권단체 반올림의 사례다. 반올림은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법정 싸움 끝에 삼성전자 기흥 공장의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1급 발암물질이 사용됐다는 사실과 유독 가스 누출 사고가 빈번했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그런데 고민정 의원의 발의한 개정안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소송과 그에 따른 법원의 명령이라는 ‘적법한 방법’으로 산업기술을 취득하더라도 대상기관인 삼성의 동의 없이는 해당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독성물질이 사용되거나 환경이 열악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정보를 취득하더라도 이를 소송에 사용하거나 공개하기 어려워지게 될 우려가 있다.
결국 이 법안의 실체는 고민정 의원이 법안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이 전무 사건과 같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이 전무 방지법'이 아니라 '반올림 방지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참여연대와 민변, 반올림, 사단법인 오픈넷,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민주노총 등 시민 사회 단체들은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고민정 의원의 법안을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들은 보도자료에서 “이 조항은 산업 기술과 관련된 모든 공익적 문제제기를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예컨대 삼성전자의 기술 자료를 적법하게 취득한 사람이 그 기술의 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보면, 공장 노동자나 지역 주민의 생명,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라면 당연히 외부에 공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조항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무의 편지와 고민정 의원의 사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몇몇 언론들은 고민정 의원의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결과 모두 11곳의 언론사가 고 의원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제목은 이렇다
고민정, 삼성전자 기술유출 방지법 발의 (한국경제)
삼성전자 핵심 기술 유출 보호법 나온다 (매일경제)
삼성전자 기술유출 방지법, 고민정 발의 예고 (서울신문)

고민정 의원의 국감 발언과 법안을 보도한 언론 기사들의 제목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고민정 의원의 법안과 이 전무 사건은 무관하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같이 고민정 의원이 예로 든 이 전무 사건을 언급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에 고통받으며 3년의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판결을 받아낸 이 전무는 다시 한 번 언론에 소환돼 '파렴치범'으로 낙인이 찍혔다.
▲ 2018년 취재 당시 뉴스타파와 인터뷰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OO 전무
현재 해외에서 근무 중인 이 전무는 고민정 의원의 발언과 언론들의 기사를 보고 고민정 의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저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증거들을 회사가 갖고 있었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 싸워야 했던 재판 과정에서 하나하나 입증이 되어가면서 천신만고 끝에 누명을 벗었다고 믿었건만… (중략)....최종 대법원의 판결을 받으며 3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을 통해 겪어야 했던 오랜 시간들로부터 종지부를 찍게 되어 그 악몽과 같았던 무거운 짐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건만, “법률이 미비하여 무죄판결 난 사건”이라는 말씀에 그만 조용히 기억 속에서 잊으려 했던 과거의 몸서리치는 기억이 다시 떠올라 가슴을 에이는 것만 같습니다.

악의적인 기술 유출에 대해서는 엄격히 단죄해야 된다는 의원님의 생각은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하는 바이나 여러 기술유출 사건의 이면에는 이러한 법을 악용하는 기업들에 의해 많은 기술자들과 공학자들이 희생되어온 측면도 엄연히 있어왔던 현실의 이면을 공정한 잣대로 살펴보시기 바라며… 순리가 통하는 사회를 위해 다시는 저와 같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기술자를 만드는 기막힌 일들은 정말 더 이상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지요?

이 전무가 고민정 의원에게 보낸 편지 중
이 전무의 편지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진에 의해 고민정 의원실에 전달됐고, 고민정 의원은 이 전무의 개인 이메일 주소로 답장을 보냈다.
제가 애초에 이 법안을 만든 이유는 갈수록 늘어나는 기술 유출 때문이었습니다…(중략)...그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 해당 사건을 뉴스를 통해 찾게 된 것입니다. 우려했던 일이 생길까봐 무죄로 판명났음을 언급했고 법원판결문을 일부러 인용하며 국감을 진행했습니다. 기술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얘기했기에 그 사건의 언급을 문제삼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놓친 부분이 맞습니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중략)
얼마 전 절친한 공학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기술유출 이면에 희생되어진 공학자들의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고민 속에 빠져있던 와중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법안을 이번 일로 더 자세히 뜯어보고 살펴볼 기회가 된 것이죠. 오히려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해외에 계시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고견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고민정 의원이 이 전무에게 보낸 답장 중
비록 공개 사과는 아니었지만 현역 의원이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것은 의미가 있다. 해당 편지는 보좌진이 아닌 고민정 의원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고민정 의원의 편지에는, 자신이 발의한 법안과 전혀 무관한 사례를 들면서 법원의 판결 취지까지 왜곡해서 발언한 이유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게 해서 죄송하다', '기술유출 이면에 희생된 공학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더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적혀 있을 뿐이다.
뉴스타파는 고민정 의원실에 왜 법안과 무관한 이 전무 사건을 언급했는지, '이 전무 방지법'이 아니라 '반올림 방지법'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의했다. 고민정 의원실은 이에 대해 "유출된 기술이 부정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해당 자료가 바깥으로 나간 것 자체를 법원이 유출로 보고 있다는 부분을 언급한 것"이라면서도 "당사자가 받을 피해에 공감해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언론이 자신의 법안에 '이 전무 방지법'이나 '반올림 방지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앞으로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우려하는 법 악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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