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출마 지역구 단체에 공기업 예산 수천만 원 '펑펑'

2021년 06월 09일 16시 01분

우리나라 공공기관·공기업 350곳이 한해 쓰는 기부·후원금 예산은 1조 원이 넘는다. 소외·취약 계층을 돕는데 쓰인다. 그런데 ‘낙하산’이 이 예산을 제 마음대로 쓴다. 자신의 총선 출마 지역에, 모교에, 자신이 만든 단체에, 심지어 자신의 취미 생활 등으로 흘러간다. 낙하산 권력의 오작동의 폐단이 공공기관 예산의 사유화, 오·남용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대선이 3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든 낙하산의 폐해를 답습하게 놔둬선 안 된다. 뉴스타파가 공공기관 개혁 프로젝트 [낙하산이 쏜다]를 시작하는 이유이다.  - 편집자 설명
정치 권력과의 연으로 전문성이나 직무 적합성에 대한 검증 없이 공공기관 임명직 임원에 오른 이들을 ‘낙하산’으로 부른다.
낙하산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 캠프나 싱크탱크에 합류해 특보, 단장, 위원, 본부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활동한다. 시·도의원 등 풀뿌리 정치 경력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되든 안 되든, 선거에 나서며 선출직 공직자를 지향한다. 이 같은 조건에 잘 부합하는 낙하산 정치인이 있다. 홍표근 씨이다.
홍표근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여성본부장을 지냈다.
충남도 의원을 두 번 지낸 부여 출신의 정치인 홍표근 씨는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을 거쳐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여성본부장을 지냈다. 2014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그를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에 앉힌다.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대형 공기업 상임감사에 여성을 임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홍 씨는 한국 주요 공기업 ‘최초의 여성 상임감사’라는 영예를 얻는다.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는 차관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자리다.
홍 씨의 감사직 취임과 함께 낙하산 논란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엄호했다. 얼마 뒤,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로서의 그의 처신은 구설에 올랐다. 자신의 고향인 부여에 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 자격으로 빈번히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4년 9월, 홍표근 감사는 감사실 직원 10여 명을 대동하고 부여의 한 노인복지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성금 300만 원을 전달했다. 사회 공헌을 앞세웠고 지역 신문은 미담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그런데, 이 300만 원의 성금은 홍 감사 개인 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공기업인 광물자원공사의 기부·후원금 예산에서 집행됐다. 이날 노인복지관 방문을 포함, 홍 감사는 2014년 한해 동안 공사 예산 3,800만 원을 사용해 부여 지역 각종 단체에 기부금을 나눠줬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 본사, 홍표근 당시 감사는 자신의 고향인 부여에 공사 예산을 몰아줬다.
기부금 집행 명목으로 사회 공헌을 내걸었지만,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의 고향인 부여에, 더구나 친분 있는 단체에 후원금을 나눠 준 홍 감사의 행위는 입길에 올랐다. 지역 정치인이었기에 정치적 행보로 읽혔다. 
국회에서 비판적인 질의가 나왔다. 2015년 4월, 김제남 당시 정의당 의원은 국회본회의 대정부질의에서 “공사 예산으로 부정한 지역구 챙기기”라고 비판하고 예산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홍 감사를 두둔했다.
홍 감사의 부여 지역 단체 후원금 몰아주기는 2015년에도 계속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광물자원공사는 2015년 3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부여 지역 10개 단체에 300만 원씩, 모두 3,0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외·취약 계층과는 거리가 먼 해병대전우회, 개인택시사업자모임에까지 기부금을 나눠줬다. 기부금은 모두 공사 예산에서 나왔다. 
당시 기부금을 받은 부여 지역 단체들도 홍 전 감사를 언급했다. “우리에게 기부금을 왜 줬는지, 홍표근 감사에게 물어보세요”(부여 한 민간단체), “홍표근 감사가 부여 출신이거든요” (부여 한 농업단체), “홍표근 감사라고 그 분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겁니다” (부여 택시사업자모임) 등 기부금을 받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홍 전 감사는 이들 기부금 집행에 얼마나 관여했을까? 지난 4월 뉴스타파는 광물자원공사에 질의서를 보냈다. 공사는 이메일 답변에서 “해당 기부를 결정한 곳은 상임감사실, 실제 기부금 집행은 감사 부서장이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즉, 홍표근 상임감사가 부여 지역의 모든 기부를 기획·실행한 것이다.
이와 관련, 광물자원공사는 ‘당시로선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당시에는 감사실 등 각 부서별로 재량에 따라 기부금을 집행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홍 전 감사는 고향인 지역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다소 긴 해명은 아래에 있다.
손은 안으로 굽는 거예요. 부여도 지금 단체들이 어렵고 힘드니까, 그러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지역을 위해서 당연히 내 지역을 위해서지. 내가 (광물자원공사에) 가보니까 다른 데를 그동안 다 (기부)했더라고요. 그러면 부여도 광물이 나오는데 부여에 주면 어떻냐? 예를 들어 고향에 그 법(기부금)을 하도록 돼 있으면 내 지역 안 챙겨요? 그것은 인간이면 다 챙기는 거예요. 

홍표근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
이렇게 기부금을 뿌린 두 달 뒤, 홍 전 감사는 ‘정치인의 본색’을 드러냈다. 2016년 1월 고향인 부여에서 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상임감사라는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지역구에 공사 예산 5,000만 원 이상을 몰아주는 등 총선 출마를 앞두고 사전선거운동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홍 전 감사의 행위는 예산의 사유화, 오남용을 넘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공직선거 출마 의사가 있는 정치인은 자신의 선거구에 기부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광물자원공사는 “현재 부여 지역 단체에 대한 기부를 모두 중단했고, 수혜 대상도 취약 계층이나 지역경제 활성화로 지정해 제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감사실이 독자적으로 기부금 예산을 편성해 집행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잘못 쓰여진 예산의 환수 조치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홍표근 씨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직 퇴임 직후인 2016년 1월 고향인 부여에서 20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홍 전 감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관련 기부 행위는 결코 선거운동이 아니며,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기부금 집행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재차 물었지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왕이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괜히 사람을 좀 뭐… 자기 엄마 같은 사람한테 뭘 피곤하게 그렇게 스트레스 받게, 옛날 잘해 온 거를 갖다가 그렇게 하십니까? 거기도 엄마 없어요? 누나도 있고 다 있잖아?

홍표근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
경영 감시를 해야 할 상임감사가 자신의 지역구에 예산 수천만 원을 뿌리고 있을 때, 광물자원공사는 해외자원개발 실패를 거듭하며 자본 잠식 상태에 허덕이고 있었다. 홍 전 감사는 2016년 총선에서 공주·부여·청양 지역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나섰지만 탈락했다. 또 2018년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부여군수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중도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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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최형석, 이상찬
편집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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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