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재벌의 민낯 ① 영풍이 오염시킨 땅에 혈세 쓰인다

2021년 09월 06일 17시 00분

영풍그룹은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이다. ‘영풍문고’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회사의 근간은 낙동강 최상류인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석포제련소’다. 아연, 황산 등을 생산해 매년 1조 2000억 원 가량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석포제련소는 설립 때부터 ‘환경파괴 주범’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낙동강을 오염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다는 오명이다. 뉴스타파는 50년간 이어져 온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파괴, 주민 건강을 외면하는 지자체의 문제를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① 영풍이 오염시킨 땅에 혈세 쓰인다
낙동강 최상류인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는 유독물질을 내뿜는 공장이 반세기 넘게 자리 잡고 있다. 아연 제련소인 ‘영풍 석포제련소’다. 1970년 10월 문을 연 이 공장에서는 주로 아연과 황산이 생산된다. 아연은 자동차 등 금속의 부식을 막기 위한 도금 소재로 많이 쓰이고, 황산은 금속제련 등에 활용되는 기초 화학 원료다. 
연간 1조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폭풍 성장한 석포제련소는 명실상부 영풍그룹을 대표하는 회사다. 영풍문고로 이름이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영풍그룹은 아연 제련소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재계 순위 30위권의 대기업이 됐다. 세계 1위 아연 제련소인 고려아연과 세계 4위 아연 제련소인 석포제련소를 동시에 소유한 덕에 세계적인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매출과 생산량만 놓고 보면 모두의 부러움을 살 것 같지만, 사실 영풍 석포제련소에는 부끄러운 오명이 늘 따라다닌다. ‘낙동강과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꼬리표다. 환경법 위반으로 봉화군으로부터 두 번이나 조업정지처분을 받았고,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조작으로 환경안전 담당 임원이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표> 2013년 이후 영풍 석포제련소가 위반한 환경 법령 건수
아연 제련소에서는 필연적으로 카드뮴 같은 건강에 치명적인 중금속이 다량 발생하기 때문에 운영 회사는 의무적으로 환경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영풍 석포제련소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2013년 이후에만 74번 환경법을 위반해 수사기관에 여러 차례 고발당했다. 낙동강 최상류에 있다 보니 1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인 낙동강에 피해를 준다는 의심도 받아 왔다. 
낙동강을 오염시킬지 모른다는 우려는 무려 반세기 전부터 제기돼 왔다. 월간조선 사장을 지낸 조갑제 씨는 1974년 국제신보 기자 시절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르포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아연 제련소가 공해기업으로 지목돼 일본 본토에서 부지를 구하지 못하고 외국 진출을 꾀하고 있는데, 석포제련소는 이런 일본의 아연 기술을 사들이는 실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석포제련소의 매연 및 폐수는 최종적으로 낙동강 수질에 영향을 줄 것이다. (중략) 이 제련소는 동방아연과 기술을 협력했기 때문에 오염 여부의 답은 오히려 동방아연의 경력을 조사하면 얻어질지 모른다.

 국제신보 (1974.3.31)
1974년 3월 31일, 조갑제 씨가 국제신보 기자 시절 쓴 기사 『제2의 암 중금속 오염 ⑧카드미움 위험지구 : 낙동강 상류의 제련소는 요주의 대상』
조갑제의 기사에 등장하는 동방아연은 1960년대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던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회사다. 1960년 일본 동방아연 제련소 주변 주민들이 뼈가 물러져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병의 원인이 동방아연에서 발생하는 카드뮴으로 밝혀지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그 동방아연에서 기술 자문을 받아 만들어 진 게 ‘영풍 석포제련소’다.

토양 정화 미루는 영풍, 정화 대상지 감추는 봉화군

조갑제의 경고는 얼추 들어맞았다. 이타이이타이병이 영풍 석포제련소 주변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는 아직 없지만, 제련소 주변 땅과 산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산은 벌거벗은 듯 속살을 드러냈고, 농지는 흙을 갈아치워야 할 정도로 오염됐다. 2021년 9월 현재, 석포제련소 인근 땅에는 토양정화 중임을 알리는 깃발이 셀 수 없이 꽂혀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가 토양정화 명령을 받은 지역(빨간색 표시)을 표시한 그래픽. 공장 내부, 사원아파트, 제1공장 하천, 공장 주변 농지에서 카드뮴과 납을 포함한 중금속이 검출되면서 영풍 석포제련소는 봉화군으로부터 수차례 토양정화 명령을 받았다.<br>
영풍 석포제련소는 공장과 주변 농지를 중금속으로 오염시킨 책임으로 2015년 봉화군으로부터 토양정화 명령을 받았다. 가장 먼저 정화를 명령받은 곳은 공장 내부의 원광석·동스파이스 보관장이다. 사원 아파트, 주변 하천과 농지에서도 카드뮴과 납을 포함한 중금속이 기준치보다 높게 검출되면서 영풍이 정화해야 할 토양 면적은 축구장 90개 크기로 늘어났다. 정화 대상에는 이 공장에서 4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강원도 태백시도 포함돼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 공장 내부 토양 중금속 오염 농도. 원광석 보관장과 동스파이스 보관장에 대해서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조사가 진행됐고, 제1공장과 제2공장은 2015년 3월부터 7월까지 조사됐다. 조사기관은 환경보건기술연구원이다.
하지만 영풍그룹은 공장 부지에 대한 정화를 시작도 안 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까지 공장 부지에 대한 정화를 완료해야 했지만 봉화군과의 소송에서 이기면서 정화를 미룰 수 있게 됐다. 영풍은 67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공장 부지에 대한 토양 정화 기간을 늘려달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2019년 6월 최종적으로 영풍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 2월 나온 1심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원고(영풍)는 정화공사의 규모, 정화공법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2년 내에 정화조치 명령을 이행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고, 그 불이행을 원고의 의도적인 의무해태로 인한 것으로 보아 이에 따른 책임을 원고(영풍)에게 모두 돌리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대구지방법원 판결문 (2018.2.8)
더 큰 문제는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해 오염된 토지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봉화군은 “영풍의 경영상 비밀이 누출될 수 있다”며 오염된 땅의 위치와 정화 이행률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봉화군은 최근 뉴스타파 취재진이 요구한 정보공개 청구도 거부했다. “영풍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일이고,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카드뮴 농산물 나온 농지, 알고보니 토양정화 명령 받은 땅

토양 정화가 진행 중인 곳은 그나마 다행이다. 토양정화에 엄두도 내지 못하는 땅이 여전히 많다. 토양정화를 한 후 땅을 다시 기름지게 바꾸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토양정화로 농사를 못 짓는 기간에 대해 그 누구도 보상해 준다는 말이 없어서다. 영풍도 봉화군도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농민들만 속을 태운다. 취재진과 만난 봉화군 석포면 농민들은 석포제련소 얘기만 나오면 언성을 높였다.
 농작물이 나오는데 팔아먹지를 못하는데 어떡해요. 채소를 심어놓으면 한 번씩 나오면 허옇게 삶아놓은 것처럼 시커메지고...

봉화군 석포면 주민 A 씨
 영풍에서 땅을 좀 샀으면 좋겠어. 웃돈 주지 않고 적게 주려고 그러죠. 우리 땅도 좀 샀으면 좋겠는데, 산다고 말 만하고 돈을 적게 주려고 하더만.

봉화군 석포면 주민 B 씨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영풍그룹이 택한 해결책은 황당하게도 선심성 선물공세였다. 영풍은 명절 같은 때 샴푸세트 등을 돌리거나 경로당 지원, 학교 도서 지원, 주민 무료 목욕탕 운영 사업을 벌이며 주민들의 환심을 사려했다. 하지만 ‘농사짓기 좋은 환경’을 바라는 주민들의 불만은 잦아들지 않았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샴푸 갖다주면 던져버리라고 다시 주지 말라고 그래요. 그깟 샴푸나 주지 말고 가스나 내보내지 않으면 되지.

봉화군 석포면 주민 C 씨
제련소 코밑에 살고 있는데 무시했어요. 제련소 분진이 날아앉은 것 같다고 보라고 했는데도 와보지도 않고, 밭에 와서 농작물을 보라고 했는데 오지도 않았어요.

봉화군 석포면 주민 D 씨
이렇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시간만 가는 사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나온 중금속은 고스란히 농작물에 스며들었다.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검출돼 농작물이 폐기 처분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타파가 봉화군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석포면에서만 카드뮴 농산물이 재배됐다가 폐기된 사례가 4건이었다. 대파, 감자, 수수 등 품목도 다양했다. 이들이 재배된 곳은 모두 석포제련소로부터 2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카드뮴 농작물이 나온 곳은 모두 영풍 석포제련소가 봉화군으로부터 토양정화를 명령받은 땅이었다. ‘카드뮴 농산물’에 대한 책임이 영풍 석포제련소에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황증거가 확인된 것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카드뮴이 검출돼 폐기된 봉화군 석포면 농산물 목록. 공교롭게도 카드뮴 농작물이 나온 4곳 모두 영풍이 토양정화를 명령받았던 땅으로 확인됐다.

영풍이 오염시킨 땅에서 자란 카드뮴 농산물, 봉화군이 보상

그럼 ‘카드뮴 농산물’을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던 이 4곳의 농부들은 영풍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았을까. 해당 농지를 직접 찾아가 농부들에게 물었더니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영풍이 아닌 봉화군에서 피해 보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봉화군이 ‘카드뮴 농산물’을 사들이는 데 쓴 세금은 2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카드뮴 검출로 폐기된 봉화군 석포면 농산물에 대해 봉화군이 쓴 세금 내역. 2012년부터 현재까지 카드뮴 농산물을 사들이는데 봉화군은 세금 2049만 원을 썼다.
뉴스타파는 봉화군에 연락해 “왜 영풍 석포제련소로 인해 생긴 농산물 피해를 봉화군이 세금으로 메웠는지”, “영풍에 구상권을 청구했는지” 등을 물었다. 봉화군은 서면 답변을 보냈다. “법령을 근거하지 않은 조치나 보상·배상을 (영풍에) 요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취재진은 봉화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히 물었다. 봉화군 유통특작과 측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분석해서 봉화군에 중금속이 검출된 농산물이 있다고 통보해주면, 봉화군이 해당 농산물을 수매해서 보상한다”는 취지로 답했다. 또 “농산물을 계속 팔고자 하는 농민이 직접 카드뮴 농산물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농산물을 병들게 한 기업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으면서,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농민들에게 오히려 책임을 떠넘기는 황당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영풍 “회사 피해 호소하는 주민 없었다” 

취재진은 영풍그룹에 연락해 불법 폐수 방류, 중금속 오염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영풍 측은 서면으로 입장을 보냈다. 정리하면, 책임질 일이 확인되면 책임을 지겠지만, 아직 책임질 일이 확인되지 않아 피해를 보상하거나 배상할 일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동 중인 공장 시설 하부 토양에 대하여는 토양을 채취 반출하는데 토목 기술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공장 외부는 관련 행정절차 진행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으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업정지 근거가 된 ‘폐수 무단방류’는 사실이 아니며, 남은 재판에서 위법성 여부가 다투어질 것으로 판단합니다....회사가 책임져야 할 주민 피해가 확인되면 당연히 회사는 보상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회사에 피해를 호소하거나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이나 사건은 없습니다. 

영풍 석포제련소
제작진
취재이명선
영상오준식 김기철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