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서 자르겠다"..박근혜 정부서 ‘찍어내기’ 유행

2013년 10월 29일 09시 34분

-문화부 산하 기관 대표도 찍어내기 표적 의혹

말로만 떠돌던 정부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 사이의 갑을관계가 뉴스타파가 단독 입수한 녹취파일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정책과장이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대표와 직원들을 불러놓고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찍어서 자르겠다"며 수차례 위협을 가한 사실을 당시 대화 자리를 녹취한 음성 파일을 통해 확인했다.

 녹취 파일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 과장이 산하 기관장과 직원들을 질책한 이유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직원이 문화부에서 요구한 대외비 문서(예술인 지원 심사위 심사위원회 명단)를 바로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녹취 파일에서 문화부의 담당 과장은 예술인 지원 심사위원회 명단을 요구한 곳은 ‘고위층’, ‘정보기관’ 등이며 자신이나 문화부가 필요해서 대외비 문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40여분 분량의 녹취 파일에서 ‘정보기관’이 자료를 요구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실제 이날 문화부 과장의 질책 이후 재단 직원 한 명이 권고사직 당했고, 또 다른 직원 한 명은 당시 상황에 격분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심재찬 당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는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지난 9월말 문화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심 전 대표는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담당 과장의 언행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고 직원들을 보호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괴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심 전 대표는 또 문화부가 한동안 자신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다가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지난 10월 16일 "국감이 이제 끝났으니 사직서를 내셔도 됩니다"라는 연락을 해 왔다고 말했다.

심재찬 전 대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의 요직을 맡은바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극 연출가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과장은 심 전 대표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사표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난 9월 초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와 직원들을 문화부로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자르겠다’는 말을 하거나 정보기관을 언급한 기억은 없다고 주장했다.


<앵커 멘트>

요즘 찍어내기가 유행입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개입 특별수사팀장 등이 찍어내기의 표적이 됐다는 여론이 거셉니다.

주로 검찰 쪽 얘긴데 이 찍어내기가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타파가 단독으로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과장이 산하 공공기관 대표와 직원들을 불러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월권이라는 것 알지만 찍어서 자르겠다", "저는 한다면 합니다"

해당 공공기관이 대외비 문서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녹취록엔 '정보기관'이 문서를 요구했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뉴스타파의 단독 보도입니다.

<최경영 기자>

"그 쪽에 세 명이 앉아있고. 내 옆에는 기획관리팀장, 이쪽에 복지사업팀장. 이쪽에 지원팀 있었죠. 김oo과장은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고…"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회의실.

문화부의 예술정책과장이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의 대표와 직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과장은 처음부터 싫은 소리 좀 하겠다며 대화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심재찬 한국 예술인 복지재단 전 대표]

“대표님, 싫은 소리 좀 하려고 모셨습니다. 그러더라고요. ”

뉴스타파가 확보한 녹취도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단도직입적으로 싫은 소리 좀 하겠습니다.”

문화부 과장이 그날 예술인 복지재단을 질책한 이유는 문화부에서 요구한 문서를 내놓지 않아서였다고 합니다. 한국 예술인 복지재단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설립된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입니다.

문화부가 복지재단에 요구한 문서는 예술인 지원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명단과 지원자 명단. 재단의 담당직원은 문화부가 자료를 달라고 하자 그게 왜 필요한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심재찬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전 대표]

“(문화부에서)자료 요청했는데 처음 들으니까 "그게 뭔데요, 그게 왜 필요한데요"라고 말하고 (문화부)주무관이 발끈한 거죠.”

자료를 못했다는 보고를 받자 문화부의 담당과장은 직접 재단 대표와 직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과장은 문화부가 그 명단이 필요해서 달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뭐 저하고 아는 사람이 아니고 저 위에서 내려오거든요. 그런 건데…왜 문화부에서 이런 거 알려고 하세요. 이런 식으로 답변을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정말 저희도 하다보면 외부, 예를 들어 정보기관에서도 이런 게 온단 말이죠"

그러면서 정보기관이라는 단어를 또다시 언급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저희는 사실은 제가 무슨 호기심이 많아서 그 업체를 확인하겠습니까? 정보기관이랑 어디서 하는 거예요. 거기 (심사에서)떨어졌잖아요. 이번에…정확하게 해명을 안 해주면 걔네들이 씹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장관님하고 독대를 하는 사이니까…"

심사위원명단이 대외비일지라도 문화부가 요구하면 내놔라고 합니다. 정보기관이 달라고 한다는 말을 재삼재사 강조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이런 거 해보면 로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 고위층에서부터 내려와요. 저희가 말 못할 사정이 있어요. 제가 지금 따로 또 이야기 하지만 정보기관이 달라고 하는데 그거 안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보기관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없어요."

"앞으로 자료를 달라고 말씀을 드리면 그냥 주세요. 아니, 저희가 대외비(대외비밀문서) 빼먹어 가지고 뭐 어떻게 하겠어요. 문제 생기면 저희가 책임져요. "

급기야 담당과장은 재단 직원들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고 위협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뭐 직원들이 근무하는 태도가 안 좋고 어떻고 뭐 이런 이야기도 지금 대학로 쪽에서 들리거든요. 그러면요 저는 감축할 겁니다. 인원을, 제가 무슨 다면 평가를 하든, 평가해서 잘라 버릴 거예요. 왜냐하면 장관님이 자꾸 사람, 인력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대화 도중 해고 위협은 수차례 반복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직원들이 어떻더라 이런 이야기 들려요. 그러면요. 저는 그 직원 자를 겁니다. 제가 자를 겁니다. 뭐냐 하면 인원을 감축시킬 거예요"

시범 케이스로 몇 명을 잘라놓고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말까지 합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직원들을 좀 한 번 좀 교육을 시켜주세요. 아니면 제가 케이스로 몇 명을 잘라 놓고 문화부가 이러니 앞으로 자료 잘 보내라 이렇게 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한다면 합니다."

실제 이날 질책 이후 재단 직원 한 명이 권고사직 당했고 또 다른 직원은 당시 상황에 격분해 스스로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직원들 앞에서 문화부 과장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예술인 복지재단 심재환 대표도 임기를 2년여나 남기고 지난 9월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담당 과장의 언행에 모욕감을 느꼈고 직원들을 보호해줄 수 없는 상황에 자괴심이 들었다고 합니다.

[심재찬 예술인복지재단 전 대표]

“(예술인 복지재단이) 신생조직이고 하니까 길들이는 거 아닌가. 아예 강력하게 꽉 잡아놓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 입장에서는 도대체 여기서 이걸 해야 하는가. 이건 심하다 싶은 건 (대표로서)보호할 수 있는 거거든요. 전혀 그런 이야길 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이런 일 저런 일 쭉 해왔지만 사람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거는 처음인 것 같아요. “

하지만 문화부는 한동안 사표를 수리하지 않다가 국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지난 10월 16일에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심재찬 예술인복지재단 전 대표]

“지금 그만두면 10개월 만에 그만두면 문화부 압력에 의해서 그만뒀다고 생각할거다 그게 (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자연스럽게 퇴진할 수 있게 문화부 일정에 따르겠다. 국정감사 이틀째가 문화부 감사였는데 (16일) 오전에 전화가 온 거야. 국감이 이제 끝났으니 사직서를 내셔도 됩니다. 이렇게 온 거야 전화가.”

심재찬 전 대표는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의 주요 요직을 맡은바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극 연출가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과장은 심 전 대표가 스스로 역량이 부족해서 사표를 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자기는 사표를 쓰겠다는거에요. 정 그러시면 알아서 하십쇼.”

또, 자신이 9월초 복지 재단 대표와 직원들을 문화부로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자르겠다거나 정보기관을 언급한 기억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화부 예술정책 과장]

(정보기관에서 원해서, 또는 위에서 원해서, 달라고 하면 빨리 줘야지 이런 식의 말씀을 하셨다…)

“기억에 없어요.”

(자르겠다는 말 안하셨어요?)

“그건 기억에 없어요. 자를 수 있나요 제가?”

(월권이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거를 주무부처 과장이 산하기관 직원과 대표 앞에서 한 것은 사실은 굉장한 행세인거거든요.)

“그렇죠. 만약에 제가 그 이야기를…기억엔 없어요.”

뉴스타파 최경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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