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① 안전 관리자의 고백

2023년 03월 16일 20시 00분

사실 지금까지 묻어놨으니까 '지금 와서 왜 그러냐'라고 이야기하겠죠. 40년 가까이 근무를 했는데 내부 고발자가 되어버리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을 안 했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삼성전자라는 이중성을 도저히 용납을 못하겠다, 그래서 마음먹은 거예요.

전 삼성전자 환경안전 관리자 강 모 씨
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삼성 그룹에서 40년간 환경안전 관리자로 근무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강 모 씨가 보낸 메일이었다. 그는 삼성 베트남 공장의 작업환경 안전 실태를 비롯한 환경, 보건, 방재 등 각 영역별 문제들을 고발했다. 뉴스타파는 이후 약 4개월간 강 모 씨와 소통하며 그의 증언을 검증했다. 현장 조사와 관계자 인터뷰, 자료 분석 등을 통해  베일에 싸여있던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애썼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고 황유미 씨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공장의 위험이 국경을 넘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그의 증언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삼성 베트남 공장을 휘감은 악취

제보자 강 씨는 2012년 12월 출장차 삼성전자 베트남의 제조공장이 위치한 박닌시를 찾았다. 출장의 목적은 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박닌 공장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주력 생산하는 곳이다. 한 해 매출이 2조 원이 넘는 대규모 공장이다. 강 씨는 박닌 공장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를 덮친 강한 악취 때문이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환경안전 관리자였던 강 씨는 공장 안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베트남 박닌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출장의 본래 목적이었던 화재 원인 조사는 금방 결론이 났다. 전기 배선이 문제였다. 남은 시간에는 자연스럽게 공장 곳곳을 살폈다. 공장 안에 진동하는 악취의 원인이 궁금했다. 악취가 주로 발생하는 곳은 공장 곳곳에 높게 서있는 흡착탑이었다. 공장 내부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은 배기시설을 타고 흘러와 탑 아래 대기오염 방지시설에 모인다. 강 씨는 이 시설의 철문을 열어봤다. 이미 교체 시기가 한참 지난 필터가 먼지를 먹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유해물질를 걸러 내야 할 활성탄(유기 화합물을 액체 및 기체에서 제거하는 다공성 물질)이 하얀 먼지에 범벅이 되어 있으나 마나한 상태였다. 정화돼야 할 유해 가스가 사실상 무방비로 방출되고 있었던 셈이다. 
악취 문제는 수수방관할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 악취가 아닌 유해가스였다. 2012년 당시 박닌 공장 내부에는 도장 공정, 즉 페인트와 같은 유해 물질을 다루고 있는 공정이 함께 가동되고 있었다. 이러한 공정에서 나온 오염물질 그대로 외부로 방출되고 있다면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 씨는 이 악취 문제를 더 깊이 살펴봤다. 단순히 필터 교체를 잘하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애초에 거대한 공장 설비의 규모에 비해 대기오염 방지시설이 작게 설계된 것이 문제였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필터 교체를 주기적으로 해봐야 금세 유명무실한 상태가 될 것이 뻔했다. 결국 공장 가동을 세우고 이미 들어서 있는 시설들을 뜯어내고 다시 세워야 해결될 문제였다.
△ 대기오염 방지시설의 구조.
박닌공장의 문제는 비단 대기오염 방지시설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출장에서 그가 목격한 박닌공장의 환경안전 문제는 삼성의 한 내부 보고서에 정리돼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박닌공장의 상태는 강 씨의 표현 그대로, '삼성이 아니었다'. 
악취는 대기방지시설에서만 새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도장 공정과 마찬가지로 유해 물질이 사용되는 인쇄 공정에는 배기시설이 아예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인체에 유해한 유기물질을 용기 덮개를 열어놓은 상태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공장 전체에 악취와 함께 유해 물질이 떠다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부분은 현장 노동자들의 건강이었다. 유해가스가 악취의 형태로 공장 안팎에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노동자 대부분은 제대로 된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고 있었다. 인쇄, 도장, 세척실 등 유기용제를 취급하는 공정에서는 일반 마스크보다 차단력이 높은 카본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러한 안전 기준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취재진과 함께 이 보고서 내용을 살펴본 최상준 가톨릭대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는 특히 IPA(이소프로필알콜)과 같은 성분을 사용하는 공정에서 국소배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체에 해로운 것은 물론, 예기치 않은 폭발 사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IPA는 전자산업에서 흔히 사용되는 세척액 중 하나”라며 “공기보다 무겁고 공기와 혼합 시 인화성이 강하기 때문에 국소배기 설비 없이 다량 사용할 경우, 낮은 곳에 정체되어 연소 폭발 위험성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 2012 박닌공장 조사보고서 일부, 국소배기시설이 설치되지 않거나 부적합하게 설치된 사항이 적발됐다. 
보고서와 강 씨의 진술을 통해 확인된 박닌공장 내부 작업환경 실태는 2017년 말 발간된 국제 유해 물질 반대 네트워크 아이펜(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CGFED의 보고서 내용과도 일치한다. 이 보고서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공장 내부의 노동조건, 작업환경, 유해 물질 사용, 시설 안전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힌 바 있다.

오염 문제 계속되는데... 삼성은 '보고서 묵살'

보고서에 나타난 박닌공장의 부적합 건수는 무려 300여 건에 이른다. 환경안전 분야의 문제점은 143건이다. 화재사건 조사를 위한 출장에서 발견한 것만 이 정도였다. 보다 면밀한 조사와 개선 대책이 필요했다. 강 씨는 이 보고서를 상부에 전했다. 삼성그룹 환경안전 담당자로서 사실상 오염물질을 무단 방출하고 있는 상태를 보고도 손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윗선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개선 조치 지시도, 피드백도 없었다.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지만, 조직은 태연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결국 강 씨는 상급자를 건너뛰고 삼성전자 본사 임원에게 보고서를 송부하는 강수를 뒀다. 그제야 삼성은 개선팀을 꾸렸고, 이듬해 이 팀을 베트남 박닌공장에 파견했다. 강 씨도 이때 개선팀의 일원이 되어 다시 박닌공장을 찾았다. 악취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태였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활성탄을 자주 교체해 일단 유해가스 방출을 줄이자고 현지 담당자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고 강 씨는 회고했다. '활성탄 다 교체하면 남는 게 뭐가 있냐'라는 식이었다.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삼성의 임원이라는 게 한심하다', 당시 강 씨는 생각했다. 
△ 전직 삼성전자 환경안전관리자였던 강 씨는 박닌공장 문제를 경영진에게 보고했지만, 삼성은 장기간 이 문제를 방치했다. 
본사가 파견한 개선팀까지 다녀갔지만 악취 문제에 대한 마땅한 조치 없이 박닌 공장은 계속 가동됐다. 강 씨 이전에도, 이후에도 악취 문제를 보고한 조사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파견된 조사팀 가운데는 삼성그룹을 총괄하는 미래전략실 소속도 있었다. 삼성의 경영진은 이미 베트남에서 발생하고 있는 환경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상 박닌공장 전체 설계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윤과 비용 문제 때문에 조치를 주저했던 것이다.   
보고서를 본사 임원에게 직접 보고한 강 씨의 행동은 조직 안에서 눈총을 받았다. 이른바 '윗선에 찍혔다’는 말이 돌았다. 인사이동 중 공교롭게 박닌공장 조사 과정에서 악연을 맺었던 박닌공장 소속 임원이 그의 상급자로 오는 일도 있었다. 강 씨는 이후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속을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으로 옮기게 된 것도 이런 연유라는 것이다.

"내가 카메라 앞에 서게 된 이유, 삼성의 거짓말"

2016년 베트남으로 간 강 씨는 박닌공장과 세 번째 인연을 맺는다. 악취는 그때도 여전했다. 박닌공장이 가동된 지 7년, 그가 보고서를 작성해 악취 문제의 원인을 밝힌 이후로도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결국 악취 문제를 해결한 것은 시간이었다. 삼성은 박닌공장 내부에서 운용하던 도장, 인쇄 같은 유해 물질 관련 공정을 아예 공장에서 없애고 협력업체에 외주화했다. 이 공정이 사라지면서 공장 주변의 악취 문제도 자연히 사라졌다.  
베트남 현지에 가서도 삼성전자와 협력사의 환경안전 문제 개선하기 위한 강 씨의 노력은 계속됐다. 박닌과 호치민에서 협력사 관리 업무를 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작업환경보다 이윤이 우선되는 베트남 현지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개선 요구는 묵살되는 일이 많았다. 아무리 관리 협력사에 부적합 처분을 내려도 당장 공장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규정과 원칙은 무시됐다. 오히려 그의 입바른 소리는 상급자, 동료들의 미움을 샀다. 2021년 결국 그는 호치민공장 환경안전 관리 업무를 끝으로 평생의 직장을 떠났다.
강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버젓이 환경안전 문제를 저지르고 있지만, 삼성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면 환경법규 위반이 0건이에요. 이건 완전히 거짓말이잖아요. 왜 분명한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에 거짓을 기재했나요. 그건 삼성 당신들이 지속 불가능한 삼성이라는 거죠.

전 삼성전자 환경안전 관리자 강 모 씨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전 세계 사업장에서 환경안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라며 “규정 미준수 등이 발생한 경우 즉각 개선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작진
촬영정형민 김기철 신영철 이상찬
편집윤석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