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멈춰선 알권리... 특수활동비 공개 소송 검찰의 '시간 끌기'

2021년 08월 19일 10시 00분

 대한민국 검찰이 쓰는 예산을 공개하라는 행정 소송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고 있다. 뉴스타파와 함께 권력 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019년 11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검찰 예산의 세부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 소송을 냈다. 검찰을 당사자로 한 예산 공개 소송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공개 요청 대상은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그리고 업무추진비였다. 그 동안 검찰 예산은 '성역'이었다.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검찰 특수활동비의 경우, 2020년 기준 국정원이 배정한 검찰 예산을 제외하고 약 94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총액만 알려져 있을 뿐, 나머지는 알 수 없다. 업무추진비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정부 부처 장·차관은 물론 광역 지자체장들도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만은 예외다. 검찰은 당연하다는 듯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 서류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공개할 경우, 범죄 수사 등 직무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진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 서류를 공개한다고 해서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미 종결된 수사 사건에 쓰인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를 공개하지 못 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몇 년 전 검찰 특활비가 검찰총장의 쌈짓돈처럼 쓰인 비위가 드러나기도 했다. 
▲ 뉴스타파와 함께 권력 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019년 11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상대로 검찰 예산의 세부 집행 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 소송을 냈다. 

최초의 검찰 예산 행정소송… 검찰의 황당한 변론과 시간 끌기

 2년 가까이 소송을 하면서 재판을 몇 차례 진행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①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은 사실 검찰에는 없고 법무부에 있다. ② 따라서 검찰에 '존재하지 않는 자료를 어떻게 공개하나?'이다. 즉, 검찰에서 국민 세금인 특수활동비를 쓴 것은 맞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썼는지 검찰은 알지 못하고 예산을 준 법무부가 알고 있다는 얘기다. 비상식적인 주장이지만, 실제로 검찰이 법정에서 펼친 변론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최초 소송, 검찰 예산의 ‘빗장’을 풀어라)
 돈을 쓴 곳에 사용 명세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진실과 거리가 있는 이런 검찰의 변론은 효과가 있다. 다음 법리 공방으로 가려면, 뻔한 사실도 시비를 가리는 반박·재반박의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그 사이 재판은 한없이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소송 대리를 맡은 하승수 변호사는 검찰의 상급 기관인 법무부에 '특수 활동비 집행 내역이 검찰에 없는 게 맞느냐?'는 내용의 사실조회 신청서를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해야 했고, 법무부에서 회신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법무부로부터 답변이 왔는데, '특수활동비의 세부 집행 내역이 검찰에 있다'고 답했다. 예산을 실제 쓴 곳에서 세부 집행 내역을 갖고 있다는 너무 당연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1년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를 공개 받기 위한 '재판의 시간'은 이렇게 지체되고 있다. 
 피고인 검찰에 특수활동비 등 예산 세부 집행 내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법리적으로 공개 여부를 따지면 된다. 이제 재판에 속도가 붙고, 곧 선고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뜻밖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 2020년 11월, 법무부 검찰과에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조회 회신

검찰의 변론기일 연기 사유 ① "검찰총장이 사퇴해서…"

 2021년 3월 18일, '변론기일 및 비공개 열람기일'이 잡혔다. 특히 이날은 판사가 검찰의 예산 집행 내역을 비공개로 열람해 비공개를 주장하는 검찰 측의 변론이 타당한지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후엔 선고의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재판을 사흘 앞둔 2021년 3월 15일, 검찰은 법원에 '기일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유는 간단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해서 소송에 대응하고 판단할 최종 결정권자가 없다. 따라서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어렵다는 취지였다. 그러니 '다음 검찰총장이 임명되는 5월 말 또는 6월 초로 변론 기일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윤석열 총장 사퇴의 여파로 재판은 연기됐고, 다음 변론 기일은 4개월 뒤인 7월 8일로 정해졌다. 이후 새 검찰총장이 임명됐고 재판의 걸림돌도 해소됐다. 
▲ 2021년 3월 15일, 검찰이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기일변경 신청서

검찰의 검찰의 변론기일 연기 사유 ② "검찰 정기 인사 때문에..."

 검찰은 재판을 사흘 앞둔 7월 5일, 또다시 법원에 기일 변경을 신청했다. 이번 사유는 '검찰 인사'였다. 즉, 얼마 전 이뤄진 검찰 인사로 공판 부장검사 등 담당 검사들이 대거 바뀌었는데, 이에 따라 새로운 담당 검사들이 특수활동비 등 행정 소송 관련한 내용을 잘 모르니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희망하는 재판 날짜로 '8월 이후'라고 적어놨다.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대로 변론 기일을 8월 19일로 변경했다.    
▲ 2021년 7월 15일, 검찰이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기일변경 신청서

검찰의 검찰의 변론기일 연기 사유 ③ "다른 재판과 겹쳐서..."

 재판이 열리기로 한 8월 19일이 왔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후 뉴스타파 취재진은 하승수 변호사와 함께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법정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 변호사도, 취재기자도 법원에 가지 못했다.   
 딱 일주일 전인 2021년 8월 12일, 검찰은 또다시 법원에 재판 날짜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최종 의사 결정권자인 검찰총장도 새로 임명됐고, 새로 부임한 공판 담당 부장검사도 소송 내용을 숙지할 시간이 충분했는데, 왜 또 재판을 미뤄달라는 것일까. 이번엔 어떤 사유를 댔을까.
이 사건 기일과 같은 일시(2021. 8. 19. 16:10)에 서울고등법원 2020누52759 사건의 변론 기일이 예정되어 있고, 현재 이 사건과 서울고등법원 2020누52759 사건의 기존 소송수행자 공익법무관 윤OO, 박OO이 소집해제 명령을 받아 해임되었고, 공익법무관 김OO이 금 년 8. 1. 자로 부임하여 새로이 소송 수행자로 지정된 상황입니다.  양 기일에 동시에 출석함이 곤란한 점 등에 비추어, 귀 원께서 일전에 기일변경을 허가하여 주시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본 변론 기일변경 신청에 이르렀사오니 부디 원활한 변론 진행의 필요를 감안하시어 허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1년 8월 12일, 검찰이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기일변경 신청서
 '이번 예산 공개 행정 소송의 실무를 공익법무관이 담당하고 있는데, 최근 두 명의 공익법무관이 소집해제로 부재한 상황이다. 새로운 담당자가 정해졌는데, 공교롭게도 다른 재판과 날짜가 겹쳐 변론 기일을 변경해 달라'는 취지다. 검찰총장의 부재로 시작한 재판 연기가 공익법무관의 소집해제로 원활한 재판이 어렵다는 사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재판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정보의 공개를 최대한 늦춰 보겠다는 검찰 측의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특수활동비 행정 소송은 시간을 오래 끌 이유가 없습니다. 소송의 쟁점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재판부가 검찰로부터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세부 집행 내역을 제출받아 검토한 뒤, 공개해도 된다고 판단되는 범위까지 공개하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검찰은 올해 들어서만 세 차례나 기일 변경을 신청했고 전부 받아들여졌습니다. 검찰 예산과 관련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송입니다. 검찰에서는 정보의 공개를 최대한 늦춰 보겠다는 속셈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애초 2021년 3월에 열렸어야 했던 재판은 세 차례 연기 끝에 오는 9월 9일 열리게 됐다. 9월 9일엔 제대로 열릴까. 또 어떤 사유를 들이밀며 연기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선고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쥔 대한민국 검찰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해선 그들이 쓴 예산의 공개는 필수다. 검찰 예산의 투명한 공개가 검찰 개혁의 시작이다. 
제작진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소송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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