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경쟁’ 사라진 5G 이통 시장···소비자보다 산업 앞세운 탓

2018년 07월 26일 09시 19분

주파수 경매 헐값 잔치에
서비스 상용화 “신사협정”
고객 선점 경쟁 사라질 판

한국 5세대(G) 이동통신 시장에서 고객 선점 경쟁이 사라진다. 지난 17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가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파크센터에 모여 내년 3월쯤 5G 상용 서비스를 같은 날 시작하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정부도 맞장구를 놓았다. 특히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세계 최초” 5G 서비스가 “국내 산업 미래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내보여 소비자 편익이 뒤로 밀릴 것으로 우려됐다.

이통사업자가 새로운 서비스 상용화 날짜를 사이좋게 맞춘 건 이번이 처음.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이를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풀어냈다. 전 국장은 “사업자들이 (시장 초기 마케팅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알았고, 정부가 (협정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흐름을 두고 정부 통신 정책에 “역행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한 방송통신정책 전문가는 “(서비스 상용화) 날짜를 서로 맞추라고 한 적은 없다”며 “보통은 (정부가) 채찍질을 해서 뭔가 하게 하고, 나중에 사업자 고충을 들어 줬는데 지금은 채찍질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 경쟁 활성화로 소매가격을 끌어내려 소비자 편익에 이바지하겠다던 통신 정책 줄기를 거스른 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셈이라는 뜻. 그는 정책 역행 까닭을 “도대체 뭘 5G라고 할까에 대해 서로 (말할 게) 없다는 데 있다”고  봤다.

노준형 제10대 정보통신부 장관(2006년 3월 ~ 2007년 9월)도 “지금도 제일 문제가 되는 게, 당장은 5G를 가지고 어떤 서비스를 차별화할지 보이는 게 없다는 것”이며 “지금 (5G로) 할 수 있는 건 4G나 엘티이(LTE)로 다 할 수 있다”고 짚었다.

노 전 장관은 “사업자는 자기 이득에 반하면 정부가 뭘 해도 따르지 않고, 5G야 현실적으로 그냥 놔두면 거의 비슷한 시기에 (3사가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해 5G 상용화 날짜 합의가 처음부터 이통 3사 뜻에 따른 결과일 수 있음을 엿보게 했다.

5G 핵심 전파 단가 96.8억으로 추락

이통 3사가 5G 경쟁으로부터 느긋한 낌새는 주파수 경매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였다. 정부가 이통 주파수 경매 최저 단가 기록을 ‘96.8억 원’으로 다시 썼기 때문. 경매 체계 설계를 잘못한 나머지 하나 마나 헐값이었다는 지적이 일었다.

실제로 지난 6월 18일 끝난 5세대 이통 주파수 경매에서 KT는 3.5기가헤르츠(GHz) 대역 안 100메가헤르츠(MHz) 폭을 9680억 원에 사들였다. 1MHz 값(단가)으로는 96억8000만 원. 2011년 8월 주파수 경매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싼값이다. 지난 2013년 8월 LG유플러스가 2.6GHz 대역 안 40MHz 폭을 4788억 원에 사들일 때 기록한 옛 최저 단가 119억7000만 원보다 22억9000만 원 더 떨어졌다.

경매 주파수 1MHz 값이 100억 원 아래로 내려간 건 처음. 이번 경매에서 3.5GHz 대역 안 나머지 폭 단가는 모두 100억 원을 넘었으되 헐값 논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LG유플러스가 80MHz 폭을 8095억 원에 사들여 1MHz 값이 101억1800만 원이었는데 경매 사상 두 번째로 쌌다. SK텔레콤도 100MHz 폭을 1조2185억 원에 낙찰받아 1MHz 값 121억8500만 원으로 옛 최저 기록인 119억7000만 원보다 불과 2억1500만 원이 많았을 뿐이다.

3.5GHz 대역 경매 설계 과정에 밝은 한 방송통신정책 전문가는 “(사업자마다 살 수 있는 총량이) 100MHz로 나와 가격이 올라갈 여지가 떨어졌다”며 “(경매 대상 폭으로) 300MHz가 나와서 SK텔레콤이 그중 140MHz를 가져가겠다고 했을 때 (가격이 크게) 올라갔을 것이고, 나중에 (최종 경매 대상 폭으로) 280MHz가 나왔을 때에도 (사업자마다 살 수 있는 총량이) 110MHz나 120MHz였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으로 봤다. 그는 “(사업자마다 살 수 있는 총량이) 110MHz였을 때 (최종 낙찰가가) 5조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이거(3.5GHz 대역 경매 대상 폭 280MHz와 사업자 구매 총량 100MHz로 설계한 것) 말고, 전에 한 게 있는데, 그때 기획재정부에선 (최종 낙찰가를) 5조원에서 7조원 정도로 봤다”고 전했다.

경매 설계가 잘못됐다는 뜻. 실제로 3.5GHz 경매를 앞두고 “LG유플러스가 최대 할당 폭 100MHz를 언제쯤 포기하고 80MHz로 물러서느냐가 관건”이라는 예측이 불거졌다. 결국 LG유플러스가 경매 2일째 9라운드 만에 80MHz로 물러서 누구나 쉽게 미리 헤아릴 수 있는 경쟁 체계였음을 방증했다.

차례
(단가순)
경매일 경매
주파수
낙찰가 1MHz 값
(단가)
낙찰자
1 2013년 8월 1.8GHz 대역 15MHz 폭 9001억 원 600억 원 KT
2 2011년 8월 1.8GHz 대역 20MHz 폭 9950억 원 497.5억 원 SK텔레콤
3 2013년 8월 1.8GHz 대역 35MHz 폭 1조500억 원 300억 원 SK텔레콤
4 2011년 8월 800MHz 대역 10MHz 폭 2610억 원 261억 원 KT
5 2016년 5월 2.6GHz 대역 40MHz 폭 9500억 원 237.5억 원 SK텔레콤
6 2016년 5월 1.8GHz 대역 20MHz 폭 4513억 원 225.6억 원 KT
7 2011년 8월 2.1GHz 대역 20MHz 폭 4455억 원 222.7억 원 LG유플러스
8 2016년 5월 2.1GHz 대역 20MHz 폭 3816억 원 190.8억 원 LG유플러스
9 2016년 5월 2.6GHz 대역 20MHz 폭 3277억 원 163.8억 원 SK텔레콤
10 2018년 6월 3.5GHz 대역 100MHz 폭 1조2185억 원 121.8억 원 SK텔레콤
11 2013년 8월 2.6GHz 대역 40MHz 폭 4788억 원 119.7억 원 LG유플러스
12 2018년 6월 3.5GHz 대역 80MHz 폭 8095억 원 101.1억 원 LG유플러스
13 2018년 6월 3.5GHz 대역 100MHz 폭 9680억 원 96.8억 원 KT

5세대 주파수 경매를 주관한 류제명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 생각은 달랐다. 낙찰가를 두고 “제가 판단했을 때는 적정 수준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류 국장은 경매 체계가 잘못 설계됐다는 지적을 두고도 “경매는, (주파수를) 할당하면서 추구하는 정책 목표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지, 세수 확보만 하겠다고 돈만 무조건 많이 벌면 된다고 하는 건 좀 치우친 (시각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상용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파정책그룹장은 그러나 “가격이 적정하다 적정하지 않다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얼마가 적정하다 적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닌 것”이라고 봤다. 앞서 정부 정책 역행을 짚은 방송통신정책 전문가도 “거의 최저 수준으로 (낙찰)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번 경매 체계를 두고 “완전한 경매라기보다 경매와 (정부가 사업자 사업 계획을 심사한 뒤 일정 대가를 받고 주파수를 나눠 주는) 심사할당을 섞어 놓은 것 같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며 결과가 “재미 없고, 너무 싱거웠다”고 덧붙였다.

이통 3사, 369조 벌어들이며 주파수 경매엔 6조 원 써

2011년 한국에서 이통 주파수 경매가 시작된 뒤 2018년 1분기까지 7년 4개월 동안 이통 3사 누적 영업수익(매출)은 369조1046억8200만 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 경영공시시스템 기준으로 SK텔레콤이 121조9228억9800만 원, KT가 167조1350억3600만 원, LG유플러스는 80조467억48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쌓인 영업이익도 25조1557억9100만 원에 이르렀다. SK텔레콤이 12조9978억4900만 원, KT가 8조2406억2200만 원, LG유플러스는 3조9173억2000만 원이다.

같은 기간 이통 3사가 주파수 경매에 쓴 돈은 얼마나 될까. 6조2410억 원. SK텔레콤이 3조3227억 원, KT가 1조6124억 원, LG유플러스는 1조3059억 원을 썼다. 이통 3사 영업수익 369조 원과 영업이익 25조 원을 헤아리면, 누적 경매 비용 6조2410억 원은 시민 공공재원인 주파수를 독차지하는 데 ‘적정한 값’이라기보다 ‘헐값’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됐다. 이번 5세대 주파수 경매 낙찰 총액 3조6183억 원을 더하더라도 9조8528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

▴SK텔레콤이 주파수 경매를 끝낸 뒤 이틀만인 6월 20일 5세대 이통 상표라며 ‘5GX’를 내놓았다. (사진: SK텔레콤)

류제명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경매 대가가 치솟았을 때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된다. (그런 현상이) 입증된 바 없다지만, (사업자) 비용의 한 요소인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경매 체계 설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방송통신정책 전문가는 그러나 “(이통 선진국인) 미국에서 꾸준히 (연구돼) 나온 게 주파수 할당 대가와 (소비자) 요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할당 대가는 (사업) 진입 비용이고, 매년 상각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주파수 경매 대금을 소비자 요금에 전가하는 행위는 정부가 맡아 막아야 할 규제 대상이라고 짚었다. 주파수 할당 단계에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편 3.5GHz와 달리 전파가 닿는 거리가 짧아 사업자 입맛에 들어맞지 않았던 28GHz 대역 1MHz 값은 2억5900만 원에 머물렀다. 3사가 800MHz 폭씩 나눠 가진 가운데 SK텔레콤이 2073억 원, KT가 2078억 원, LG유플러스가 2072억 원을 내게 됐다. 3사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찰 1라운드 만에 사들일 수 있는 최대 폭인 800MHz를 미리 제시된 최저경쟁가인 2072억 원에 사겠다고 써내 정부가 마련한 경매 체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5세대 이통 주파수 경매 결과.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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