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그 후① 아직, 김용균의 죽음은 되풀이된다

2022년 03월 31일 17시 56분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법이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더 이상 이윤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산재사망 유가족의 호소가 담긴 법이다. 4년에 걸친 투쟁, 한겨울 천막 농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법 시행 두 달, 과연 노동 현장의 안전은 유가족들의 뜨거운 바람대로 변했을까. 뉴스타파가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 이후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또 사람이 끓는 쇳물에 빠졌다

2022. 3. 2.(수), 05:43 경 
충남 당진시 소재 제조업 공장 내에서 
도금 포트에서 작업자가 작업 중 
불상의 이유로 포트에 빠짐.

안전관리공단 사망사고 속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장에서 일하던 57세 노동자 故 최 모 씨의 죽음은 네 줄짜리 기록으로 남았다. 이 사건은 대기업 현대제철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건으로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갓 시행된 중대재해 벌법의 적용을 받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수사당국은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을 이 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또 다른 산재 사망 소식에 밀려 잊혔다.
△ 현대제철 노동자 故 최 모 씨의 산재사망 사건 직전의 모습.
취재는 당시 사건 직전의 현장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485℃ 액체화된 아연이 끓고 있는 포트(Pot, 단지) 앞에서 재해자 최 씨는 혼자였다. 쇳물 앞에서 기댈 곳도 없이 긴 막대로 어딘가를 내려찍는 그의 모습은 한 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가 만들어진 2010년 환영철강 사건과 같은 땅 당진, 같은 유형의 사건이라는 점이 공교로웠다. 
사고 발생 2주 뒤, 취재진은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TF와 함께 현장을 찾았다. 제철소의 육중한 몸집은 먼 곳부터 방문자를 압도했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기계의 굉음이 지척의 소리까지 삼켜 버렸다. 신발 코가 걸리는 높은 철제 계단, 들쑥날쑥 얼굴 높이로 서있는 구조물, 그리고 어디선가 뿜어져 오는 불쾌한 열기. 신경이 곤두서고 움직임이 위축됐다.         
△ 故 최 모 씨의 산재사망 사건 현장. 사건 당시에는 없었던 안전 난간이 뒤늦게 세워졌다.
취재진이 찾은 사건 현장은 사진 속 모습과 사뭇 달랐다. 튀어 오른 아연 조각과 온갖 부산물로 어지럽던 포트 주변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쉼 없이 끓어오르던 아연은 작업 중지 조치로 잠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포트 주변에 새로 세워진 안전 난간이었다. 애초에 의지만 있다면 2주 안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거대 공장의 깊은 속, 야만의 일터

포트는 가로, 세로 각 3미터, 깊이 5미터 크기다. 완성된 냉연 강판을 담갔다 꺼내 아연을 입히는 용도다. 최 씨의 역할은 이 포트 주변에 고체화되어 달라붙는 아연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주걱처럼 생긴 길이 1.5m의 철제 정으로 내리쳐 부수고 그 잔해를 떠낸다. 아연의 농도를 맞추라는 지시가 오면 1t 무게의 아연 덩어리를 끌어다 포트에 집어넣기도 한다. 현대화된 공장의 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시적 작업이지만, 완제품의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 공정이다.   
사건 시각은 새벽 5시 40분경, 3교대 새벽 근무를 한 최 씨는 오전 7시 교대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 중에 있었다. 정을 내려찍던 최 씨가 무게 중심을 잃고 아연 포트 안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사고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유리창 너머 제어실에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장비를 조작하느라 사고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제어실 직원은 아연 포트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처음엔 사고 신고가 아닌 화재 신고를 했다.
사건 직후 현장을 조사한 송영섭 변호사(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법무법인 여는)는 현장의 첫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이 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는 현장 바로 인근에 있는 안전 수칙 표지판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표지판에는 사고 발생 지점이니 추락을 주의하라는 경고문구, 안전고리를 체결하고 안전 난간을 설치해야 한다는 수칙, 안전 감시자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하라는 안내 등이 적혀있었다.
△ 아연 포트 주변에 걸린 2개의 동아줄은 사실상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유명무실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대해 작업발판, 추락방호망, 안전난간, 울타리, 덮개 등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43조 1항) 현장에는 관련 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안전 장치는 고도화된 공장 시설의 일부로 보이지 않는 동아줄 두 개가 전부였다. 안전난간 설치가 불가능할 경우에 한 해 안전대를 사용하라는 법규(42조 2항)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한쪽에 위치가 고정돼 있는 형태여서 수시로 포트를 돌며 일하는 작업자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사건 당일 현장을 찾은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공장에는 사고가 발생한 시설 말고도 비슷한 도금 포트가 5군데 더 있었다. 의아한 점은, 다른 포트 주변에는 안전 난간이 정상적으로 설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작업도 단독작업이 아닌 2인1조로 이뤄지고 있었다. 일부 포트에는 사람의 힘을 대신해 부유물을 떠낼 수 있는 로봇팔이 설치돼 있기도 했다. 회사는 이 작업 시설의 위험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지 그 방법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한 공장 안의 차별, 그 이면에 이윤이라는 낯익은 구조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나중 일이었다. 

아직도, 비정규직의 외침에는 메아리가 없다

현대제철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3조 원, 영업이익이 2조 5천억 원에 이른다. 당진제철소의 노동자 사망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속노조는 지난 15년 사이 3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산재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회사는 거금을 들여 시설을 개선하겠다는 안전대책을 내놓았지만 중대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안전예산, 인력을 대폭 확대하도록 지시했고, 이에 현대제철은 안전예산 5천억 원 집행, 안전 관리 인력 2백 명 영입을 발표한 바 있다.
△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외경. 현대제철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3조 원, 영업이익이 2조 5천억 원에 이른다.
현장 시찰을 마친 국회의원과 기자들이 차에 오르려고 할 때, 공장 문 앞에서 기다리던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에워쌌다. 앞서 직접 현장에 동행하며 자신들이 처해 있는 위험을 알리겠노라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 위에 서서 많은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쏟아냈다.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도 막상 노동 현장의 안전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 노동자들의 거친 말 속에 단서가 있었다.
재해자 최 씨가 하던 업무는 본래 하청업체의 파견 직원이 맡는 작업이었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였다. 최 씨도 본래 하청업체 파견 직원 신분으로 이 일을 수년 간 해왔다. 그러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그는 별정직 무기계약 직원으로 신분이 전환됐다. 도금 작업과 같은 위험 공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를 회사가 직접 고용하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법 개정의 취지는 직접 고용을 통해 비정규직이 맡고 있던 위험한 작업의 여건을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별정직 채용이라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구색은 맞췄지만, 정작 최씨의 노동 환경은 그대로였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새벽녘 끓는 아연 앞에서 맨몸으로 정을 내려 찍었다.
△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한 아연 포트 주변에서는 이미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고 있었다. 2018년, 튀어오른 아연으로 인해 화상을 입은 재해자의 모습.
이미 아연 포트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고 있었다. 언젠가 큰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전조였다.  2018년에는 설비교체 작업을 하던 외주업체 직원의 다리가 아연 포트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포트 주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튀어 오른 아연이 바지를 파고 들어 부상을 입었다.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이 소속된 하청업체에 얘기해봤지만 돌아오는 얘기는 뻔했다. 권한도 없고, 노동자를 대신해 원청에 요구할 입장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노조를 조직하고 현대제철 사용자 측에 안전 관련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 번도 현대제철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지난 25일 중앙노동위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이 있었을 때, 현장 노동자들이 감독관을 찾아가 해당 시설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현장 감독관 역시 시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내용은 이후에 나온 시정명령서에서 빠져 있었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감독당국이 어떤 조치를 내렸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길이 없었다. 
△ 공장 내 다른 포트에 세워진 로봇팔 시설.
유독 최 씨가 추락한 포트에만 안전 시설이 없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해당 포트의 가동률이 다른 포트들에 비해 30% 수준이라고 말했다. 해당 공정에서 나오는 이윤이 30%에 불과하다보니 투자되는 안전 비용도 같이 줄어드는 식이었다. 2명이 함께 해야할 작업에 1명이 투입됐고, 안전난간과 로봇팔 같은 안전 장비는 배제됐다. 가동률이 낮다고 노동자의 위험도  줄어드는 것이 아닌 것은 현장의 상식이지만, 안전을 비용과 숫자로 들여다보는 거대 조직의 눈에는 이러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기간을 놓고 봤을 때 생산량이 약 30%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동자의 업무 강도나 위험이 30%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업무량이 몰릴 수도 있는 것이고 내일 업무량이 확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30%는 그걸 평균화한 것일 뿐이예요. 작업자는 그저 근무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 뿐이에요. 어쩌다 일이 많이 몰릴 때는 당연히 더 피곤하고 위험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동일하게 위험한 장소이고 그에 따른 동일한 안전 조치가 필요한 것인데, 위험에 방치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작업장이었습니다.

송영섭 /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사건 직후 현장조사
이에 대해 현대제철 측은 안전시설 설치에 있어 작업 편의성과 공간적인 제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협의체회의 등을 통해 안전에 대한 요구를 개진할 수 있는 여러 창구를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또 모든 현장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위험요소를 시정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자의 알 권리 외면한 사업주...중대재해 키웠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재계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한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과 같다.  '1호가 될 수 없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중대재해 사건 가운데 당국의 수사 진도가 가장 빠른 곳은 경남 창원 지역이다. 
창원 소재 두성산업에서는 지난 2월 말 급성 중독으로 인해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했다. 이에 수사당국은 두성산업 대표이사에 대해 중대재해 처벌법 사건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2일 창원지법은 이에 대해 영장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미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상황이라는 재판부의 설명이 있었지만,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경영주에 대한 이른바 온정주의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창원 소재 중견기업 두성산업에서 16명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급성 중독되는 중대재해 사건이 발생했다.
두성산업은 대기업에 에어컨 부품을 납품하는 지역의 중견 제조업체다. 2020년 매출은 377억 원, 직원은 백 명 수준이다. 노조가 결성돼 있지 않아 이 기업의 노동 환경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이 회사 근로 감독에서 최대 주 81시간 근무(근로시간 한도 위반), 근로계약서 작성 부실, 연차유급휴가 관리 소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미실시 등의 사안을 적발한 바 있다.  
두성산업의 급성 중독 사건 직후, 인근의 다른 업체에서 또다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해 소재의 자동차 부품제조업체 대흥알앤티였다. 2020년 매출 3320억 원, 직원은 7백 명이 넘는 대형 사업장이다. 이 회사에서도 현장 노동자 13명이 동일한 급성 중독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지역 총 29명의 노동자가 중독된 성분의 이름은 트리클로로메탄이다. 추리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수면 마취제 클로로포름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발암성과 생식 독성이 확인돼 연구용, 제한적인 산업적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물질이다. 수사 결과,  두 회사는 이 물질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산업용 세척제가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흥알앤티에서 사용한 제품은 허용 기준치의 약 4배, 두성산업에서 사용된 제품에서는 무려 8배의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
△ 노동자들이 중독된 트리클로로메탄 성분은 연구용, 제한된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 세척제를 직접 사용한 노동자들이 제품에 이런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안법상 사업주는 유해 물질 함유 제품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알리도록 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간 수치가 올라가고, 일부는 황달 증상까지 보였지만 작업장의 유해 물질에 의한 직업성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석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재해자가 병원 직업환경의학과를 찾아가도 어떤 물질에 노출됐는지 알지 못해 공장에 다시 복귀한 일도 있었다. 노조 차원에서 사실 파악에 나서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죽음에 몰아넣었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조경보다 못한 노동자의 안전

대흥알앤티로 향하는 길, 아직 건물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남았지만 도로 곳곳에는 사설 도로라는 안내 표지와 CCTV가 부착돼 있었다. 사설 경비원은 곳곳에 나타나 취재진의 촬영을 막아 섰다. 김준기 금속노조 대흥알앤티지부 사무장은 이러한 회사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이번 사건을 불렀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회사는 크고 작은 산재가 발생할 때마다 사건을 조용히 덮어왔다고 한다. 2018년 노조가 생기기 전 회사의 공식적인 산재 사고는 단 1건, 하지만 노조가 생긴 이후 매년 20건 가까운 산재가 집계되고 있다. 배경에는 사업장에 발생한 재해도 암암리에 공상으로 정리하는 관행이 있다고 주장했다.  
△ 경남 김해 소재 대흥알앤티 공장 내부 모습. 환기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뿌연 연기가 공장에 가득 차 있었다. (제공: 금속노조 대흥알앤티 지회) 
유해 물질에 의한 직업병 발병 역시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연기를 빨아들이지 못하는 공장의 국소배기장치(환기 시설)를 보며 늘 갑갑함을 호소해 왔다. 혹시 모를 유해 물질로부터 노동자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장치였지만, 그마저도 유명무실했던 셈이다. 아침에 쓰고 간 하얀 마스크가 퇴근할 때면 노랗게 변해있을 것을 보며 노동자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노조는 국소배기장치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차일피일 계획을 미뤄왔다. 이미 안전 투자 비용이 커서 여력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들여다본 안전 투자 비용의 태반이 신규채용 인건비였다. 사람을 뽑는다고 돌아가지 않는 배기장치가 작동할 리 없었다. 회사는 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에서 해당 사항이 지적을 받고서야 개선에 나섰지만 안전 대책은 늘 규제의 문턱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에서 멈춰 섰다. 최소한의 안전에 들어갈 작은 돈조차 아끼는 회사는 유독 회사의 조경을 가꾸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정갈하게 늘어선 공장 주변의 나무를 내다보며 거친 말을 뱉곤 했다. 
△ 대흥알앤티의 외경. 공장 주변 나무들이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다.
유독물질이 함유된 산업용 세척제를 선택한 것도 결국 작은 돈을 아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두성산업과 대흥알앤티에 세척제를 납품한 회사는 김해 소재의 유성케미칼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가 신고한 제품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문제의 성분 트리클로로메탄 함유 사실이 아예 빠져있다. 유해 성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납품업체는 단가를 낮춰줄 것을 요구하다보니 아예 신고 정보를 허위로 입력한 것이다. 트리클로로메탄은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물질과 비교하면 비용이 4분의 1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성케미칼이 납품한 사업장은 두 회사를 제외하고도 80곳이 넘는다.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또 다른 노동자들이 원인도 모른채 유해 화학 물질에 노출돼 있는지 모른다. 제조사의 신고에 의존하는 당국의 물질안전보건자료도 허점을 드러낸 셈이다. 갈수록 유해 물질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영세 제조사의 경우 대체 친환경 물질을 이용하는 대신 이윤을 늘리기 위해 자료를 조작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산업용 세척제를 사용하는 전국 2800개 소에 대해 집중 감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취재진은 두성산업, 대흥알앤티, 유성케미칼 측에 관련 사실들에 대해 질의했으나 업체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제작진
촬영신영철, 정형민
편집정애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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