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 사건〉 자백 진술에 눈감은 검찰의 '반쪽' 수사

2020년 11월 27일 16시 05분

HDC신라면세점에서 벌어진 대표이사의 명품 시계 밀수 사건과 관련, 검찰이 일부 관련자들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한 정황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밀수에 관여했다는 사실상의 자백 진술이 나왔는데도  특정 업체 관계자들에 대해서만 수사를 벌이지 않고, 기소도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 수사를 빠져나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면세점 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따이공' 업체 J사 소속 직원들이다. 뉴스타파는 최근 '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사건'에 대한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기록 2600여 쪽을 입수,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뉴스타파 보도로 처음 알려진 HDC신라면세점 대표의 명품시계 밀수 사건. 이 사건의 주범인 이길한 전 HDC신라면세점 대표는 외국인 명의로 시계를 구매한 뒤, 직원들을 동원해 시계를 국내로 몰래 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4건, 총 1억 7천여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밀수한 혐의다. 관세청과 검찰은 지난 6월 관련자 7명과 HDC신라면세점 법인을 관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현재 인천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인정하면 처벌, 기억 안 난다는 업체는 불기소... 검찰의 '반쪽 수사' 의혹

HDC신라면세점 시계 밀수 사건에 동원된 시계 대리구매 업체는 두 군데다. H사와 J사. 모두 외국인 직원을 고용해 국내 면세점에서 화장품 등의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중국에서 보따리장사를 하는 '따이공' 업체다. 이 중 H사는 3 건의 시계 대리구매를 인정해, 이 회사의 대표와 직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J사는 대리 구매한 것으로 확인된 시계 3개 중 하나에 대해서만 범죄 혐의가 인정됐다. 게다가 범죄를 인정한 J사 직원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걸까? 
관세청과 검찰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J사와 관련해 범죄가 인정된 시계는 까르띠에다. J사 직원 리 모 씨가 지난 2016년 4월 28일 장충동 신라면세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리 씨는 지난해 7월 관세청 조사에서 "2016년 4월 28일 구매한 까르띠에 시계와 관련해 회사 상사인 이OO의 지시로 저의 인터넷 면세점 ID로 실제 주문을 한 것이고, 다음날 찾아서 이OO에게 주었다"고 진술했다. 
리 씨가 까르띠에 시계를 구매해 홍콩으로 나가고 얼마 뒤, HDC신라면세점 팀장 황 모 씨는 이길한 대표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J사 직원인 이 모씨를 홍콩에서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이 씨는 바로 까르띠에 시계 구매를 지시했던 인물이다. 황 팀장은 지난해 관세청 조사에서 "이 시계를 국내로 들여와 이길한 대표에게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관련자들이 모두 범행을 자백하고, 시계가 홍콩을 거쳐 국내로 밀수된 사실이 인정됐지만, 시계 구매를 지시하는 등 밀수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J사 직원 이 씨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의문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수사 선상에 올랐던, 2016년 5월 대리구매된 또 다른 시계 브레게에 대한 수사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브레게는 면세가격이 3500만 원에 달하는 최고급 명품시계다. 당시 이 시계를 대리구매했던 J사 소속의 또 다른 외국인 직원도 관세청 조사에서 "J사의 직원 이모 씨에게 대리 구매를 부탁받은 뒤 시계를 구매했고, 이 시계를 홍콩에서 역시 이 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밀수방법은 앞서 설명한 까르띠에 시계와 같은 방식이었다. 
이런 사실은 이 외국인 직원이 시계를 구입한 날, 이길한 HDC신라면세점 대표와 팀장 황 씨와 나눈 문자 메시지에서도 확인된다. 밀수를 주도한 이 대표가 황 씨에서 "조치한다"는 보고를 받고 감사를 표시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범죄 정황이 확인됐지만, 이 브레게 시계도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관세청 조사에서 J사 직원 이 씨는 “시계 구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추가 수사를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심지어 검찰은 J사 홍 모 대표가 까르띠에 구매 직원, 브레게 구매 직원과 같이 홍콩에서 입국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홍 대표에 대한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정황상 J사 대표인 홍 씨가 시계 밀수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눈을 감은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설립된 J사는 면세점 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유명 '따이공' 업체다. 반면 범죄를 자백한 뒤 관련자 모두가 재판에 넘겨진 H사는 설립된지 1~2년에 불과한 신생업체였다. 검찰이 소규모 신생업체의 범죄는 탈탈 털면서도 오랫동안 면세점 업계와 거래해 온, 고질적인 유착의혹이 의심되는 대형업체에 대해서는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뉴스타파는 시계 밀수에 깊숙이 개입하고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빠져나간 J사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끝내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HDC신라면세점에서 벌어진 명품시계 밀수 사건에는 두 개의 '따이공' 업체가 관련돼 있다. 면세점 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J사와 신생업체인 H사다. 관련자 모두가 재판에 넘겨진 H사와 달리 J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검찰 수사를 빠져 나갔다.  

"누가 검찰 수사 신뢰하겠냐"... 검찰 "밀수 인식 증거 없다"고 반박

이러저리 법망을 피해간 J사와는 달리 시계 밀수에 관여한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 H사 측은 "검찰이 반쪽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H사의 변호를 맡고 있는 최명호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 기록에 증거들이 나와 있는 주범들에게는 전화만 걸고 한번 걸어서 ‘기억이 나느냐’고 물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니까 덮어버렸습니다. 누가 이런 수사를 신뢰하겠습니까?J사에서 조직적으로 밀수에 동조하고 밀수를 조장한 점이 검찰이 내놓은 증거에 명백히 나와 있습니다. 이러면 시계 밀수가 어떻게 근절이 되겠어요? 일부 재벌들, 돈 있는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얼마든지 빠져나가고, 이게 국민에게 좌절감을 주는 거 아닙니까?

최명호 변호사 / H사 변호인 
뉴스타파는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인천지검에 질의서를 보내, 부실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인천지검은 의혹을 부인했다. 인천지검은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답변을 통해 “J사 직원 이 모 씨는 대리구매 단계를 넘어 밀수까지 인식하며 이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J사가 대리구매한 세 건 중 한 건만 기소한 것에 대해서는 “J사 시계 두 건에 대해 관련자들이 범행을 부인하여 국내로 반입되었는지 여부를 확정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제작진
촬영기자이상찬
편집정지성
CG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