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칼럼] '인덱싱 이론'과 검-정-언 복합체

2023년 10월 26일 14시 16분

권력의 프레임 그대로 따르는 한국 언론... '허위 인터뷰' 입증됐나  

‘인덱싱 이론(Indexing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언론 보도가 ‘힘센 자’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미국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학자 랜스 베넷이 권력과 언론의 역학 관계를 연구해 이론으로 정립했습니다. 미국 상황에서 나온 이론이지만 한국의 언론과 권력 관계에 대입해도 딱 맞아떨어집니다. 아니, 한국에선 ‘따라가는 경향’ 정도가 아니라 따라가는 게 ‘공식’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언론의 기본 책무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 주류 기득권 매체들은 권력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그들의 논점(Talking Point)과 시각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이유는 뭘까요? 간단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고,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덱싱 이론’이 들어맞는 언론 환경에서 권력 감시라는 책무가 들어설 자리는 없겠죠.
2023년 9월 1일, 검찰이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 집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시작한 직후 종편 MBN은 온라인 판에 ‘단독' 표기를 달고 <검찰, ‘김만배 허위 인터뷰'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압수수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기사 최초 입력 시간은 오전 8시 48분, 최종 수정 시간은 오전 9시. 검찰이 압수수색을 시작하자마자 ‘허위 인터뷰'라는 키워드가 기사 제목으로 툭 튀어 나온 것입니다. 이어 8분 뒤 연합뉴스도 다급하게 같은 제목만으로 1보를 올렸습니다. 
허위 인터뷰? 과연 뭐가 허위라는 걸까요? 인터뷰 내용이 허위라는 건지, 인터뷰 자체가 허위라는 건지? 기자나 데스크는 허위 인터뷰라는 말을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썼을까요.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분석해 내용이 허위임을 발견한 걸까요? 아니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지어낸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검찰이 던져준 한마디를 그대로 따라간 걸까요.
뉴스타파는 9월 7일 72분 분량의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 음성파일을 가감없이 공개했다.
이날 언론보도에 등장한 ‘허위 인터뷰'라는 용어는 검찰과 대통령실, 집권여당이 뉴스타파를 공격하기 위해 짜놓은 프레임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이후 ‘허위 인터뷰'라는 말은 삽시간에 대다수 매체를 도배했습니다. 9월 1일부터 현재까지 빅카인즈에서 ‘허위 인터뷰'와 ‘뉴스타파'를 넣어 전국 54개 주요 언론사 기사를 검색해보면 1200여 건의 기사가 나옵니다. 포털에는 훨씬 더 많습니다. 같은 기간, 같은 키워드로 네이버 뉴스를 검색하면 무려 500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허위 인터뷰=뉴스타파”라는 낙인 찍기 공작이 성공한 셈입니다. 이 과정에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어디가 허위인지, 과연 이것이 ‘인터뷰’가 맞는지 등에 의문을 갖고 보도하는 매체는 거의 없었습니다. 
뉴스타파가 9월 7일 김만배-신학림 음성파일을 전체 공개( https://newstapa.org/article/n0A3I) 한 이후에야 일부 매체들은 ‘허위 인터뷰' 대신 ‘녹취록’ 보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선 공작' 프레임, 저급한 정치공학 기획 

검-언-정 복합체가 만든 프레임의 두 번째 키워드는 ‘대선공작'입니다. 9월 3일 국민의힘의 소위 ‘가짜뉴스 괴담 방지 특별위원회'가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국기 문란의 범죄’이자 ‘대선공작’이라고 규정해주자 대다수 언론은 집권여당의 말을 그대로 졸졸 따라갔습니다. 
이틀 뒤인 9월 5일엔 드디어 용산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희대의 대선공작'이라는 가이드라인을 하달합니다. 9월 3일부터 지금까지 네이버에 ‘뉴스타파’와 ‘대선공작’을 함께 검색하면 무려 천여 건의 기사가 나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뉴스타파를 겨냥해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 운운하며 발악 수준의 막말을 퍼부은 것도 ‘대선공작' 프레임에서 뻗어나간 변주입니다. 국정감사 때 나온 집권여당 의원들의 발언도 대동소이합니다.
용산을 향한 충성 경쟁, 독립언론 뉴스타파에 대한 두려움의 병리적 발현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언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검찰은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엄호와 지원사격을 업고 소위 ‘대선 허위보도' 수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검사 10명으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9월 14일 뉴스타파 사무실과 한상진, 봉지욱 뉴스타파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오늘(10월 26일)은 경향신문과 뉴스버스 기자들의 집을 압수수색했습니다.
2년 전에 여러 매체에서 나온 대선 후보 검증보도를, 그것도 대선이 끝나고 새 정권이 출범한 뒤 1년 반 넘게 지난 이 시점에서 검찰이 마구잡이 수사를 벌이는 것은 마치 브레이크가 나간 차의 폭주를 보는 듯 합니다. 매우 저급한 정치공학 차원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행태입니다. 이런 기획이 어느 선에서 어떤 의도로 실행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윤석열 정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명을 재촉할 뿐이라는 걸 역사는 보여주고 있죠. 
검찰과 정치 권력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 안에서 그들의 말을 따라가는 언론사들도 언론의 위기, 신뢰 추락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인덱싱 이론이 증명되는 사례를 한국 매체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그 자체가 큰 고통입니다. 

진짜 '가짜뉴스'는 무엇인가?

10월 25일 카타르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대통령실
어제 오늘 대다수 매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중동 순방에서 엄청난 외교 성과를 거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조선일보가 ‘尹대통령·카타르 국왕 정상회담...LNG선 5兆 사상최대 계약’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입니다. 
마치 윤 대통령이 카타르 국왕과 정상회담을 해서 5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LNG 선박 수주 계약을 따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현대중공업과 카타르에너지는 이미 지난 9월 27일 서울에서 LNG 선박 17척, 39억 달러(5조 3천억 원) 상당의 건조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여러 매체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KBS도 지난 9월 30일 현대중공업이 5조 원 규모의 LNG 선박을 수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기업들이 따 낸 해외 수주에 숟가락 얹기, 치적 부풀리기, 이를 통한 용비어천가 부르기 패턴은 이명박 정권 때 많이 봐왔습니다. 대통령 순방에 따라가는 기자들이 대통령실이 주는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안에서는 더 부풀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국민들을 바보로 보는 게 아니라면 이런 기사가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지는 않겠죠. 바로 이런 기사들이 진짜 ‘가짜뉴스' 아닐까요?
윤석열 정권은 뉴스타파 보도를 빌미 삼아 방통위, 방심위 등 온갖 감독, 규제, 심의 기관 등을 총동원해 ‘가짜뉴스'를 뿌리뽑겠다고 합니다. 잘 됐습니다. 가짜뉴스라는 용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차제에 정말 ‘가짜뉴스’를 근절하는 데 힘껏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칼럼은 “옥석을 가려보자"라는 제목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김용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