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의 기부금 비리... 31억 보훈성금 유령회사로 빠져간 것도 몰랐다

2021년 10월 15일 16시 15분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기부·후원 영역에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해 모금을 강요한 행위는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다. 현행 법률도 국가기관은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예외였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뉴스타파가 보훈처와 보훈처 출신 전관들이 만든 나라사랑재단의 불법 유착 구조를 취재하던 중 지금까지 밝혀낸 비리 외에 더 심각한 비위를 추가로 찾아냈다. 보훈처조차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비리다.

 ■ 정체불명 유령회사로 흘러간 보훈 성금 포착

지난 8월 뉴스타파는 나라사랑재단의 기부금 집행 흐름을 파악하기로 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재단의 ‘기부금품 모집과 지출 명세서’를 확인했다. 그런데 재단의 뭉칫돈이 한 업체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2013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모두 5차례, 적게는 2억 6,910만 원에서 많게는 16억 원이 한 업체로 빠져나갔다. 모두 31억 3,316만 원이다. 막대한 보훈 성금이 흘러간 업체는 ‘StoryRoct.Inc’였다. 지급 명목은 ‘애국정신함양’이다. 
나라사랑재단은 2013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모두 5차례 '애국정신함양' 명목으로 31억 원의 기부금을 페이퍼컴퍼니에 지출했다.
나라사랑재단이 이 업체에 31억 원의 보훈 성금을 준 때가 2013년이다. 재단이 보훈처와 특혜성 업무 협약을 맺은 지 3년째, 박근혜 정부 1년 차를 맞던 해다. 2013년 그해, 나라사랑재단의 기부금 수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훈처가 몰아준 기부금은 54억 6,400만 원이다. 그런데, 이 중 60%에 이르는 31억 원이 ‘애국정신함양’ 명목으로 ‘StoryRoct.Inc’라는 곳에 흘러간 것이다. 
나라사랑재단의 연도별 기부금 총액, 박근혜 정부 1년 차인 2013년 54억 6,000만 원의 기부금 수익을 올렸다. 
대체 이 업체는 어떤 곳이기에 재단으로부터 30억이 넘는 거액을 지급받은 것일까? 업체가 수행했다는 ‘애국정신함양’ 사업의 실체는 뭘까? 
뉴스타파 확인 결과, 나라사랑재단이 수십억 원을 송금한 ‘StoryRoct.inc’는 실체가 없는 정체불명의 페이퍼컴퍼니인 것으로 드러났다. StoryRoct.inc는 사업 내역이 없는 전형적인 ‘유령회사’였다. 30억 원이 투입된 ‘애국정신함양’ 사업의 기부 수혜자도 찾지 못했다.
법원 등기소에서 확인한 결과, StoryRoct.inc라는 이름의 법인은 없었다. 홈페이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대표자가 누군지, 법인 주소가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설립해 어떤 사업을 했는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것이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나라사랑재단의 2013년 기부금품 모집과 지출 명세서, StoryRoct.inc에 지급된 기부금이 확인된다.

■ 법인 소재지, 대표자, 사업 실체도 전혀 파악 안돼

재단 관계자와 연락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재단 사무국장을 맡았던 최 모 씨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회계와 관련해선 내가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재단 이사였던 조 모 씨도 “이사회에 참석한 적이 없고, 당시 일들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재단 이사장 유병혁 씨는 현재 해외 도피 중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재단 주무 부처인 보훈처는 알고 있을까.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갑)은 31억 원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보훈처에 질의했다. 지난 두 달 동안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은 보훈처의 기부금 비리를 공동 조사했다. 
그런데, 보훈처로부터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재단 주무관청인데도 수십억 원이 빠져나간 StoryRoct.inc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업체의 실체는 물론 재단과의 거래 내역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실태 파악이 안 된 것이다. 나라사랑재단이 보훈처에 제출한 2013년 결산보고서에도 이 업체와의 거래 내역은 빠져 있었다. 재단이 유령회사를 내세워 보훈 성금 31억 원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 유령회사로 흘러간 기부금 31억… 보훈처는 “아무 것도 몰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재호 의원은 10월 12일, 보훈처 국정감사에서 “알지도 못하는 페이퍼컴퍼니로 (나라사랑재단이) 돈을 송금했다”며 “보훈처 결산 자료에 보고되지 않고, (재단) 비자금으로 쓰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후 보훈처는 현황 파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2014년 나라사랑재단이 보훈처에 제출한 2013년 결산 보고에 StoryRoct.inc의 자금 지출 내역을 누락한 채 보고해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최근 송재호 의원실의 질의 과정에서 해당 내용을 파악했음.

9월 16일 송재호 의원실에 보낸 보훈처의 구두답변 중 
보훈처 출신 전관들이 만든 재단이라고 무작정 믿은 걸까. 보훈처는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자료를 교차 확인하진 않았다. 2013년 한 해 기부금 수익 54억 원 중 절반이 넘는 31억 원의 집행 내역이 빠졌는데도, 이를 몰랐다는 해명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 적폐 청산 내걸고 시작한 보훈처 감사, 엉터리·졸속으로 끝나

2017년 정권이 바뀌자 보훈처는 나라사랑재단을 감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은 정치적 감사라고 반발했지만, 피우진 보훈처장은 적폐 청산을 내걸고 추진했다. 감사원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보훈처 자체 감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두 달 동안 벌어진 보훈처 자체 감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가장 중대한 비리에 대해선 손도 대지 못했다. ▲보훈처가 동원된 기부금품법 위반 행위 ▲보훈처와 재단 간 유착·특혜 구조 ▲StoryRoct.inc에 지급된 수상한 30억 원에 대해선 아무런 조사도 없었다. 보훈처는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금껏 함구하고 있다. 
더구나 보훈처는 당시 감사를 통해, 2011년 나라사랑재단과 맺은 특혜성 업무 협약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러나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왜 하필 나라사랑재단에 기부금을 몰아준 것인지 ▲재단이 해야 할 업무인 기부금 배포와 결과 보고서 작성을 보훈처 공무원들에게 위임한 ‘윗선’이 누구인지 ▲전국의 보훈지청장 명의로 공문을 뿌리며 기부를 강요한 지시자가 누구인지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

■ 재단 이사장 개인 비리 조사로 그친 '적폐 청산' 감사  

적폐 청산이란 핑계로 진행된 감사가 엉터리·졸속, 그리고 '제 식구 봐주기'로 끝났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비리는 묻히는 듯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2021년이 돼서야 뉴스타파의 취재로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훈처는 여전히 진상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보훈처 감사는 유병혁 재단 이사장의 개인 비리에만 천착했다. 구조적 비리는 눈을 감았다. 유 이사장이 보훈처 승인 없이 다른 업체에 금전을 제공하고, 1억 원 남짓한 기부금을 착복했다는 게 주된 감사 내용이다. 보훈처가 밝혀낸 유 씨의 비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2009년 주무관청인 보훈처의 허가를 받지 않고, 주식회사 씨티엘의 전환사채를 5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약정서 작성 (씨티엘은 유병혁 이사장이 대표로 있는 업체) 
② 2009년부터 재단에서 주식회사 씨티엘의 사무실 임대료 및 인건비 부당 지급 
③ 2011년부터 주무관청인 보훈처의 허가를 받지 않고 서류 없이 재단 돈을 이사장에게 무단 대여 
④ 2014년 재단 정기예금을 해지하면서 발생한 이자수익 436만 원을 이사장이 유용하고, 주무관청에 허위 보고 
⑤ 2013~2014년 재단 돈 1억 10만 원을 이사장이 착복하고 장부엔 미지급금으로 허위 기재 
⑥ 2013년 1월 주식회사 엘앤와이와 사무실 임차계약을 맺고 재단 돈으로 보증금 1,500만 원을 지급한 뒤 임차계약이 종료된 2014년 8월 이후에도 보증금을 회수하지 않는 방법으로 임차 보증금 유용 

보훈처 2017년 감사 결과 보고서 재구성
유병혁 이사장의 개인 비리 중 StoryRoct.inc에 지급된 31억 원의 사용처와 횡령 조사는 쏙 빠졌다. 유 씨와 관련된 혐의 중에서 가장 금액이 많고, 가장 수상쩍은 거래인데도, 2017년 감사는 물론 2021년 지금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보훈처는 당시 유 씨의 횡령액이 약 1억 원 정도라고 축소 발표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2017년 당시 보훈처의 특정 감사 결과보고서  
이렇게 축소·졸속·엉터리 감사를 마친 보훈처는 2017년 12월 26일 유 씨를 형사 고발했다. 유 씨는 보훈처가 감사가 벌어지는 도중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이듬해인 2018년 6월 1일, 소재 불명을 이유로 유 씨에 대해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유 씨에 대한 수사는 이렇게 중단됐다. 현재도 유 씨는 해외 도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 보훈 성금 제공한 업체 알고보니, 유 씨 아내·자녀가 100% 소유 회사

2017년 보훈처의 감사가 엉터리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보훈처는 유병혁 이사장의 개인 비리를 조사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실을 누락했다. 유 씨가 재단 돈을 제공한 업체가 바로 유 씨의 아내·자녀가 운영하는 법인이란 것이다. 보훈처는 이런 사실을 감췄다. 
앞서 밝힌 대로, 유 씨의 개인 비리 ⑥번에 등장하는 ‘재단 돈으로 임대보증금을 무상으로 받은’ 주식회사 ‘엘앤와이’는 재단 이사장 유 씨의 아내 이 모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법인 등기부등본과 기업 공시자료를 확인한 결과, 엘앤와이의 대표는 유 씨의 아내 이 씨였고, 지분은 이 씨와 두 자녀가 100% 소유하고 있는 가족 회사였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자료에 따르면, 나라사랑재단은 2013년 3월 엘앤와이에 두 차례, 기부금 3,685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온다. 
유 씨의 아내와 두 자녀가 운영하는 회사에 준 3,685만 원은 국가유공자 등이 지원받아야 할 보훈 성금이었다. 법인 등기상 엘앤와이는 정보서비스 제공과 공연 기획을 주업종으로 한다고 돼 있다. 보훈 사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보훈처는 이런 비리 사실을 외부에 발표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조사도, 조치도 따로 없었다. 보훈처의 29쪽 분량의 외부 발표용 감사 보고서 어디에도 이 같은 ‘가족 비리’는 담겨 있지 않았다.
이번엔 유 씨의 비리 ①번과 ②번에 등장하는 주식회사 씨티엘을 살펴보자. 씨티엘은 2006년 5월 유 씨가 설립했다. 이후 2012년 7월까지 대표로 재직했다. 
씨티엘과 나라사랑재단은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을 함께 썼다. 인력을 공유하고 업무도 같이 했다. 씨티엘 직원이 재단 회계 업무를 담당했다. 재단 돈으로 고용한 직원이 씨티엘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재단 전 사무국장 최 씨는 “(씨티엘과) 한 사무실에 있었고, 회계 업무도 다른 (씨티엘) 직원이 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한 회사처럼 운영한 것이다. 연간 수십억 원의 기부금을 받는 재단이었지만, 상근 인력은 1명에 불과했다. 
또한, 보훈처가 유병혁 씨의 개인 비리 ②번에서 확인했듯, 나라사랑재단은 씨티엘의 전환사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2009년 씨티엘에 5억 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앞서 지적한 대로 유병혁 씨는 재단의 이사장이자 씨티엘의 대표이기도 했다. 왼손에 있던 돈을 오른손으로 옮기듯, 5억 원은 어차피 유 씨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돈을 쓰는 행위 주체가 '재단 이사장 유 씨'에서 '씨티엘 대표 유 씨'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씨티엘 대표로서 유 씨는 이 돈으로 대체 뭘 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 씨 등은 제 잇속을 챙기는 심각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보훈처 감사는 그 부분까지 조사 범위를 넓히지 못했다.

■ 보훈 성금을 주식 투기 자금으로 유용

뉴스타파 취재 결과, 유병혁 씨 등 씨티엘 경영진은 나라사랑재단이 준 5억 원으로 주식을 대량 매집·매도하는 수법으로 차익을 노리는 ‘기업사냥’의 시드 머니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가 대표로 있던 씨티엘은 2009년 10월 나라사랑재단에서 5억 원을 받자마자, 곧 기업사냥에 나섰다. 두 달 뒤인 12월 상장법인 T사의 주식 177만 9천 주를 매수했다. 보훈 성금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것이다. T사는 제주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사다.
씨티엘은 경영권 분쟁을 겪던 T사를 인수하기 위해 투자회사 대표 윤 모 씨 등과 함께 T사 주식을 여러 사람 명의로 수차례 분할 매입했다. 2010년 1월, 씨티엘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T사의 실질적인 최대주주가 됐다. 
T사는 이렇게 주식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됐고, 2010년 한 해 동안 최대주주가 네 번이나 바뀌는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유병혁 씨 등은 매수한 주식을 되파는 수법으로 상당한 시세 차익을 남겼다. 보훈 성금을 주식거래 자금으로 둔갑시켜 제 잇속을 챙긴 것이다. 
씨티엘은 2009년 10월 나라사랑재단에서 5억 원을 받은 직후, T사 주식 약 13억 원 어치를 매수했다. 그리고 2010년 해당 주식을 순차적으로 매도했다.
이 같은 투기성 주식 거래가 진행될 당시, 씨티엘의 경영진은 대부분 나라사랑재단 임원도 겸하고 있었다. 유병혁 씨는 씨티엘 대표이자 재단 이사장이었고, 재단 감사 겸 회계 담당자인 천 모 씨는 씨티엘의 부사장이었다. 당시 천 씨는 T사 주식 79만 9천 주를 매입했다. 
이 밖에 2008년부터 재단 감사로 있던 송 모 변호사는 ‘기업사냥’이 이뤄지던 2010년∼2011년 씨티엘 감사를 겸직했다. 2011년 씨티엘의 계열사인 씨티엘테크의 감사였던 조 모 변호사도 2013년 나라사랑재단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국가유공자와 보훈 대상자를 위해 쓰였어야 할 기부금이 재단 이사장의 ‘기업사냥’에까지 유용되고 있는데도 보훈처는 어떠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 제재는 커녕 2년 뒤 특혜의 날개를 달아줬다. 2011년 보훈처가 먼저 제안해 재단과 특혜성 업무 협약을 맺었고 100억 원이 넘는 기부금과 2억 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몰아줬다.

■ 재단 비리 알고도 묵인…10년 전 국회 지적도 무시

201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나라사랑재단의 파행 운영과 관련한 국회의원 질의가 이어졌다. 당시 이성남 의원(통합민주당)은 김양 보훈처장에게 “재단 설립을 보훈처가 추진한 것이냐?”고 물었다. 김 처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성남 위원 : 재단법인으로 ‘함께하는 나라사랑’이라는 법인이 있지요?
◯국가보훈처장 김양 : 예, 그렇습니다. 있습니다.
◯이성남 위원 : 애초에 이 법인은 나라사랑 큰 나무 배지를 보급하는 사업을 전담시키려고 보훈처에서 설립 추진했지요?
◯국가보훈처장 김양 : 예, 그렇습니다

2010년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가보훈처 국정감사 회의록 중
또한 당시 국정감사에서도 나라사랑재단이 ‘페이퍼 재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근 인력이나 업무 능력이 없고 거액의 기부금을 불투명하게 쓰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보훈처 자체 조사를 통해, 해당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 씨티엘 사장(유병혁 씨)과 부사장(천 모 씨)이 재단 업무를 총괄하면서 나라사랑재단의 수입을 씨티엘에 넘기고 있다는 비위도 드러났다. 

■ 2010년 보훈처 조사, 사실상 비리 재단에 면죄부 제공

이에 대한 당시 보훈처의 조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비리의 싹을 잘라내기는커녕, 비리의 몸통격인 유병혁 씨를 재단 이사장에 앉혔다. 보훈처는 보훈처 차장 출신으로 당시 이사장이었던 이종정 씨와 씨티엘 부사장 천 씨를 재단 임원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조치를 마무리했다. 
두 사람이 물러나고 얼마 뒤 2011년 1월, 보훈처는 재단 설립자이자 씨티엘 사장인 유병혁 씨를 새 이사장으로 승인했다. 비리의 핵심 인물에게 이사장 감투까지 씌워준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보훈처는 유 씨의 재단에 특혜성 업무 협약을 안겨줬다. 
협약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2013년 54억 원을 비롯해 나라사랑재단은 2013~2017년, 모두 119억 원의 기부금 수익을 거뒀다. 이 가운데 재단에서 유령회사인 ‘StoryRoct.Inc’로 흘러간 보훈 성금은 31억 원에 이른다. 또한 재단은 2014년부터 최소 1억 8,000만 원의 부당 수수료까지 챙겼다.

■ 보훈처 등에 업고 배지 장사, 앉아서 쉽게 돈 벌어  

이게 끝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해방 70년을 맞아 대대적인 나라사랑 캠페인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보훈처는 ‘나라사랑 배지 달기’ 운동을 펼쳤다. 많은 공공기관·공기업이 동참했다. 
2015년 8월, 발전 공기업인 한국중부발전은 ‘광복 70주년 나라사랑 배지(2종) 달기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중부발전 내부 결재 문건을 보면, 배지 4천 개를 구입해 방문객에게 무료로 배포하도록 했다.
그런데 배지 구입처가 다름 아닌 나라사랑재단이다. 실제 중부발전은 재단에 배지 구입 명목으로 기부금 200만 원을 지급했다. 영업은 보훈처가 다 하고 수익은 고스란히 재단이 챙긴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중부발전 내부 문건, 국가보훈처에서 나라사랑 큰나무 배지를 구입한다고 돼 있다.  

■ 재단 이용해 박승춘 사조직 ‘국발협’ 안보 교육까지 진출

2015년 5월, 울산보훈지청은 한국동서발전에 공문을 보냈다. ‘다음 달 울산시청 대강당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보훈 관련 토크쇼를 열려고 하는데, 적극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보훈처는 소요 경비 700만 원을 꼭 집어 요구했고, 동서발전은 나라사랑재단에 700만 원을 보냈다.
그런데, 토크 콘서트 행사의 강사로 이름을 올린 인사 중 오 모 교수의 이력이 눈에 띈다. 그는 ‘나라사랑 전문강사’로 소개됐다. 오 씨의 경력을 확인해 보니,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 소속 뉴라이트 인사였다. 공기업으로부터 예산을 강제 모금한 뒤, 돈은 나라사랑재단에 보내고 안보교육은 국발협 인사에게 맡기는 식이다. 
국발협은 2010년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설립해 초대 회장까지 맡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박승춘 전 처장의 ‘안보 사조직’ 역할을 해왔다. 앞서 뉴스타파는 2014년 5월, 박승춘 처장과 국발협의 관계를 추적 보도한 바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한국동서발전 내부 문건, 행사 계획서를 보면 1부 강연자로 오 모 교수가 섭외된 것을 알 수 있다.

■ 문재인 정부 보훈처 적폐 청산, 이대로 무너지나

보훈처와 나라사랑재단은 특혜 제공과 이익을 공유하는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공기업을 강요해 보훈 성금을 독식해왔다. 이 과정에서 재단 이사장은 주식 투자로 잇속을 챙기고, 보훈 성금 수십억 원을 횡령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그동안 보훈처가 유 씨와 재단을 비호했다는 흔적은 곳곳에서 포착돤다. 2012년 5월, 이사장 유 씨는 국고 보조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선고(집행유예)를 받았다. 하지만 보훈처는 유 씨에게 재단 이사장 자격을 유지하도록 했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유예가 확정된 뒤, 3년이 지나지 않으면 공익법인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라사랑재단은 보훈처 소속 공익법인이다.
또 매년 재단 결산 보고에 재단과 씨티엘, 유 씨 사이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나오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감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정기 이사회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아도 주무부처인 보훈처는 제재 없이 방치했다. 보훈처가 사실상 재단 비리를 키운 셈이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보훈처는 여전히 유 씨와 전관 재단을 감싸고 있다. 2017년 적폐 청산을 한다며 감사를 벌였지만, 유 씨의 개인 비리만 일부 들춰냈을 뿐, 재단과 보훈처 간 조직적인 비리 혐의에 대해선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난 2021년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비리 혐의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보훈처는 요지부동이다. 기부금을 강제 모금한 사실 앞에서도 보훈처는 모르쇠로 버티고 있다. 국가유공자에게 쓰여야 할 보훈성금 31억 원이 정체불명의 유령회사로 흘러갔는데도 침묵한다.
그 사이, 재단 이사장이던 유 씨는 검찰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주했고, 특혜 협약의 당사자인 박승춘 전 보훈처장은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처벌 받은 이도, 책임지는 이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가 추진했던 적폐 청산이 이렇게 하릴없이 무너지고 있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임선응, 박종화, 박중석
CG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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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협업 송재호 의원실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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