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⑩ 정부는 피해자 '2차 가해' 왜 방치했나
2024년 09월 27일 10시 00분
“산불로 집이 탔다.” 이 말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 “산불로 삶이 탔다.”
경북 울진에서 지난 3월 4일 산불이 시작됐다. 불길은 바람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삼척시까지 갔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울진 곳곳을 태웠다. 이 불은 열흘 동안 산림 2만여 헥타르, 주택 322채와 농·어업 시설 393개소 등을 태운 뒤 13일에야 완전히 꺼졌다.
약 300가구가 산불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 말은 울진·삼척이 입은 피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금강송에서 자라는 송이 버섯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산이 불에 타 생계 수단을 잃었다. 도시에서 귀농해 양봉을 하던 노부부는 꿀벌을 다 잃었다. 많은 주민들이 가축이나 반려 동물도 잃었다. 가족 사진, 평생 추억이 담긴 물건들, 십수년 일궈온 사업장까지, 울진 산불이 태운 건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이었다.
이재민들은 오랜 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었다. 이들의 삶은 재난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기사는 산불로 삶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와, 이들의 일상 회복을 제대로 돕지 못하는 정부의 피해 지원 제도 문제를 담았다.
정태광(61) 씨는 산불이 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울진 북면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 울진에서 산 지는 25년이 넘었다. 아내와 결혼 후 처음에는 인천에서 살다가 IMF를 맞아 아내의 고향인 울진으로 내려왔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카고 크레인’(중장비 화물 트럭)을 몬 지 15년째다.
태광 씨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면서 살았다.
열심히 일한 덕분이었는지 생활이 조금씩 폈다. 내년이면 아내와 결혼한 지 30년. 내년이나 내후년에 월세 생활을 마치고 집을 장만한다는 꿈도 꾸고 있었다.
울진에서 산불이 났다. 집이 불에 타던 순간에 태광 씨는 밖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집에는 아내 혼자 있었다. 아내는 혼자서 집에 물을 끼얹어 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불이 너무 빠르게 번졌다. 설상가상으로 마당에 있는 상수도에선 물도 나오지 않았다.
불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오자 아내는 키우던 개만 간신히 차에 태워 대피했다. 태광 씨가 부리나케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집 근처 도로에 얼마 못 가 차를 세우고 울고 있었다.
▲사진: 산불 전후 정태광 씨 집. 슬라이드를 좌우로 밀어보세요.
불이 지나간 뒤 태광 씨가 집에 가보니 집이 다 내려앉아 있었다. 마당에 있던 태광 씨의 공구 창고 속 공구와 요소수 대란 때문에 사서 쟁여놓은 요소수도 다 타버렸다. 집 안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로 산 지 3년 밖에 안 된 세탁기와 김치냉장고는 시커먼 뼈대만 남아있었다.
제일 속이 타는 건 태광 씨가 15년 동안 일을 하면서 매일같이 써놓은 작업 일보와 차곡차곡 모아놓은 자료들이 한 순간에 전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30년 결혼 생활을 하면서 키운 아이들의 배냇저고리, 아이들의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장과 상장 같은 것도 잿더미가 돼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됐다. 이 상실은 산불 이후 2달이 지나도 태광 씨를 울컥하게 만든다.
아내는 타버린 집을 멀리서 바라만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태광 씨가 탄 집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내는 멀찍이서 타버린 집을 바라만 봤다.
산불 이후 태광 씨 부부는 울진의 한 체육관에서, 또 인근 호텔에서 임시로 머물다가 이제는 정부에서 지원해준 7평 남짓한 컨테이너식 임시조립주택에 머물고 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이 “임시주택이 지어졌으니 좋겠다”는 식의 말을 할때마다 태광 씨의 속은 뒤집힌다.
산불 이후 전국 각지에서 국민 성금 827억 원(동해안 산불- 경북·강원 산불 포함·4월 30일 기준)이 걷혔다. 정부는 울진 산불이 발생하고 3일 뒤인 3월 6일, 경북 울진과 삼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울진 산불 이후 약 한 달이 지나자 언론에서는 울진 산불 피해 주민에게 최대 9000만 원이 지급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산불로 거주하고 있던 주택이 불에 탄 주민들에게 국민성금(전소 기준 5200만 원)과 정부 지원금(전소 기준 3800만 원)을 합쳐 9000만 원까지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언론 보도가 쏟아지던 날, 태광 씨의 통장으로는 2500만 원이 들어왔다. 세 개의 구호단체에서 각각 1500만 원, 650만 원, 350만 원이 입금됐다.
왜 5200만 원이 아닌 2500만 원이 입금된 걸까. 태광 씨가 살던 집도 전소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태광 씨는 그 집의 ‘주인’이 아니었다.
국민성금은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5200만 원,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2500만 원을 지급했다. 국민성금에서 나온 지원금은 6개 모금 단체와 지자체, 행안부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액수가 결정됐다. 행안부에서는 “누구에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사안은 모금단체가 직접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모금 규모가 큰 희망브릿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는 “산불 이후 기부금협의체를 구성해 6회(5월 16일 기준)의 협의를 진행했다. 이 협의를 통해 1차 국민성금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저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집을 소유하지 못한 세입자라 집 주인들보다 지원금이 적구나” 태광 씨와 주위 세입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국민성금이 지급된 뒤 정부 지원금도 나왔다. 정부 지원금은 어떻게 지급됐을까?
강현철(61) 씨가 울진 북면의 집에 산 지는 20년이 넘었다. 현철 씨는 아내와 함께 전 씨 집안 문중 땅을 관리하며 1년에 40만 원씩 세를 내고 살았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 많은 것들을 직접 고쳐가며 산 것이 20년. 조금씩 집을 고치는 데만 2천만 원 이상을 썼다.
그래도 현철 씨는 살던 집이 좋았다. 조용했고 공기도 좋았다. 집주인인 전 씨 문중은 1년에 한 번 시제 때만 방문했고 현철 씨에게 나가달라는 말도 한 적이 없었다. 현철 씨가 문중 땅을 관리해주니 서로 좋은 일이었다. 현철 씨 부부의 자녀들도 다 이 집에서 컸다. 별 일이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 집에서 살 예정이었다. 계획은 산불 이후 전부 틀어졌다.
현철 씨는 세입자였다. 현철 씨는 ‘세입자’라는 단어를 산불이 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울진군청에서 자신을 세입자라 불렀다. 세입자, 세입자… 산불 이후 지원금이 나올 때마다 지겹도록 들은 단어다.
국민성금 2500만 원 지급 후 이재민들에게는 정부 지원금이 지급됐다. 주택 피해에 따른 생활안정지원금이라는 명목이었다. 금액은 최대 3800만 원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이 역시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울진 산불 주택 피해에 대한 정부 지원금으로 집이 전소된 자가 소유주들에겐 3800만 원, 집이 반소된 소유주들에게는 1900만 원이 책정됐다. 세입자들에게 책정된 정부지원금은 최대 한도 900만 원이 책정됐다.
900만 원이라는 금액도, 일괄적으로 지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대’ 900만 원이라는 의미였다. “세입자에 대한 주거비 지원은 보증금과 6개월 간의 임대료를 비교해 보다 많은 금액을 지급한다.” 정부 행정규칙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즉 900만 원이 지급되려면 보증금 900만 원 이상의 집에 살거나, 월세 150만원 이상의 집(150 X6 = 900)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규정대로라면 현철 씨는 1년에 40만 원을 내고 살았으니 정부 지원금이 20만 원이 지급된다. 자가 소유주에게 지급되는 3800만 원과 비교하면 0.5% 수준이다. 현철 씨가 이 집에 살면서 들인 수리비 같은 건 지원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자가 소유주들에게는 일괄적으로 지원 금액이 지급됐지만 세입자들에겐 임대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직 지원 금액이 지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울진에서는 이렇게 낡은 집에 세입자가 직접 집을 고쳐 사는 경우가 많고 월세가 아닌 1년세 형식의 주택 임대차도 상당수다. 계약서도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철 씨 역시 별도의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도 현행 지원제도를 세입자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할까? 울진군청에서는 “그런 사례들이 있어서 어떻게 지원금을 지급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숟가락 하나 갖고 나온 게 없는 현철 씨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아내는 아직도 타버린 집을 보면 펑펑 운다. 산불 이후 건강까지 악화됐다. 현철 씨는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날에도 산불 이후 계속 된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국민성금으로 지급된 2500만 원은 일단 병원비로 사용할 계획이다.
3년간 세 들어 살던 집이 불에 타 이재민이 된 김옥수(60) 씨는 이 정부 지원금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원래는 자가 전소자의 경우 1600만 원, 자가 반소 800만 원, 세입자는 600만 원이 주택 피해 지원 금액이었다. 그런데 울진 산불이 워낙 피해가 커 추가 지원금이 책정됐다. 그 결과 자가 전소자가 3800만 원, 자가 반소가 1900만 원, 세입자가 최대 900만 원이 책정됐다. 뭔가 이상했다.
추가 지원의 비율 자체가 달랐다. 세입자들은 집주인에 비해 추가 지원 금액도 비율도 턱없이 적었다. 세입자와 집주인간 지원 금액의 차이는 추가 지원금이 붙고나니 더 커졌다. 옥수 씨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별이잖아요. 금액에도 그렇게 차별을 두고, 또 지급하는 것도 없는 사람을 먼저 지원해주는 게 맞지, 그것도 차별해서 집 갖고있는 사람 먼저 또 줘버리고 우리는 안 주잖아요.”
실제로 거주하던 집이 불에 탄 경험을 한 옥수 씨는 그만큼 그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다. 옥수 씨 역시 실제로 거주를 하다 산불에 집을 잃었다. 다만 차이는 옥수 씨는 세를 들어 살았다는 것이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세세하게 필요 액수를 따졌다기 보다는 2019년 강원·고성 산불 당시에도 추가 지원금이 지급된 게 있어 거기에서 액수를 더하는 식으로 금액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실거주자면서 세입자였던 우리들은 진짜 오갈 데 없고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나몰라라 내팽개쳐놓고…”
상황이 다 정리되면 다시 원래 살던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옥수 씨는 집주인이 세를 더 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임시주택 생활을 마치고 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할지 모른다.
산업 잠수사로 40년 이상 일 한 육한태(61) 씨도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이자 세입자다. 한태 씨는 산불로 고가의 산업 장비를 다 잃었다.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장비들은 한태 씨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이 장비들을 다시 다 사야한다.
왜 이런 일이 한태 씨에게 일어났을까? 한태 씨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살고있던 집에 산불이 옮겨 붙었을 뿐이다.
한태 씨가 이 집에 이사를 온 건 약 6년 전. 산업 잠수 일에는 많은 장비가 필요했고 한태 씨는 이런 장비를 보관할 큰 창고가 있는 집을 원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던 울진 북면의 낡은 집에 세를 내고 살기 시작한 이유다.
막상 가보니 집에 손 볼 곳이 많았다. 모든 것을 직접 수리했다. 직접 구조물을 가져다가 샌드위치 패널 집을 지었다. 6년간 이곳에서 살면서 집 수리비만 4천만 원이 넘게 들었다. 집 수리비가 많이 나와 세는 1년에 50만 원으로 계약했다. 그러다 산불로 평생 모아온 장비를 다 잃었다. 장비 가격만 2억 원 가량이다.
한태 씨는 세입자라 국민성금 2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이걸로는 급한 장비부터 사야 했다. 가장 먼저 산 것은 온도, 수심이 표시되는 잠수 시계였다. 이 시계 하나에만 250만 원이 들었다. 수백, 수천만 원이 넘는 나머지 장비들은 중고로 구할 수 있는 것들만 샀다. 더 비싼 장비를 필요로 하는 일은 아예 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태 씨의 임대료는 1년에 50만 원. 한태 씨가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금은 얼마일까? 현행 규정대로라면 한태 씨에게 지급되는 주택 피해 정부 지원금은 25만 원에 불과하다. 1년에 50만 원의 세를 내고 살았으니 6개월치 25만 원이 된다.
“솔직히 뭐 밟히는 느낌이죠. 너네는 세입자니까 그냥 그대로 살아라. 이 놈만 먹고 떨어져라 이런 식이죠.” 현철 씨의 말이다. 세입자들은 같은 처지에 서러움을 나누다보니 친구가 됐다.
“다음에 산불이 안 나란 보장이 없잖아. 다음 피해자들은 우리 같은 꼴은 안 보게 하자고.” 몇몇 세입자들은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세입자 단체를 꾸렸다. 어느새 친해진 세입자들은 밥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법과 제도는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엔 지나치게 단순하고 맹점도 많다.
뉴스타파가 현재(5월 31일)까지 확인한 결과 울진 산불로 집이 전소돼 임시주택을 제공받거나 전월세 지원을 받은 이재민은 모두 198가구다. 이 가운데 37가구는 세입자, 161가구는 주택 소유주다.
울진군청 집계에 따르면 자기 소유 집이 모두 탄 이재민은 모두 248가구다. 임시 주택은 집이 전소돼 당장 거주할 곳이 없는 이재민들에게 제공되는 컨테이너형 집이고, 전월세 지원은 임시주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임시로 임대 거주를 할 경우 그 임대료를 일부 지원해주는 제도다.
그렇다면 이 지원을 받지 않은 87가구는 뭘까? 대부분은 ‘비상시’ 거주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집을 세 주고 다른 도시에서 거주하는 임차인, 울진 집을 주말 주택 등으로 이용하거나 가끔 한 번씩 찾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산불 피해 이후 자녀 집으로 거처를 옮겼거나 요양병원 등에 들어간 사례 등도 있긴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고 울진군청은 설명했다. 군청 관계자는 “정확하게 조사된 것은 없지만 50가구 이상은 비상시 거주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시 거주자에게도 주택 전소에 대한 국민성금과 정부 지원금은 모두 지급됐다. 국민성금 5200만 원과 정부 지원금 3800만 원 등 모두 9000만 원이 지급됐다.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 등 운영 기준에 따르면 주거비 지원의 대상은 “직접 주거용으로 사용 중이던 주택”이라고 나와있고, “실제 거주 사실을 확인해 지원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직접 주거용이 아닌 주택, 즉 주말 주택 등으로 집을 사용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
울진군청은 나름대로 완전한 폐가나 공가는 조사 당시 제외했다고 말했다. 다만 “울진 주택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이든지 먹고 자고를 했다고 하면 주거 생활을 한 주택으로 봐야하기 때문에 지원금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어쩌다 한 번 방문하는 저 집에도 9000만 원이 지급됐다더라.’ 실제 거주하던 주택이 불에 탄 이재민들에겐, 특히 돈을 주고도 못 살 모든 삶의 흔적과 생계 수단까지 다 잃어버린 집 없는 세입자에게는 박탈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단순히 지원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주택 피해가 삶의 터전을 상실한 피해보다 큰 것인지, 피해 지원 제도가 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자체를 세입자 입장에선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진: 산불 전후 장도영·손미옥 씨 집. 슬라이드를 좌우로 밀어보세요.
재난과 차별은 세입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상시’ 거주자들보다 실제 거주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지원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울진 산불 피해 이재민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도영 씨 부부는 양봉업과 과실 농사 등이 생계 수단이었다. 꿀벌이 전부 불에 탔는데 정부에서 지원되는 것은 한 통에 7만 원. 실제로는 자재 값을 빼더라도 한 통에 25만 원 정도가 드니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나무 천여 그루에 대한 지원 금액으로는 86만 9000원이 지급됐다. 계산을 해보니 한 그루당 700원 꼴, 묘목 값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 금액은 행정을 하는 울진군청에서도 황당한 금액이었다. 울진군청 산림힐링과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작물 별로 단가가 다 나와있는데 현실과 너무 맞지 않게 단가가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나무는 그루 수와 상관 없이 면적으로만 따져서 단가를 계산하도록 되어있고 그 가격 자체도 밤 나무 128원, 대추 나무 256원, 떫은 감 256원 등 터무니 없이 낮다는 것이다.
울진의 경우 송이버섯의 대표 산지인데 피해 지원 작물에 송이버섯은 포함돼 있지 않아 송이버섯 피해 농가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 관계자는 “현행법상 송이버섯 피해 농가를 지원할 방법이 없어서 국민성금 민간 단체에 피해 농가의 피해액, 손실액 등을 조사해서 자료를 넘겼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울진군청에서 조사한 피해 금액은 74억 원이다.
정부 지원 제도에서는 피해자를 자가, 전소, 반소, 세입자, 농어업인,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으로 분류한다. 행정에서는 편할지 모르나 이재민들의 실제 피해 상황과는 괴리가 크다.
장규동(52) 씨는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평생 사업을 했다. 정보통신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규동 씨는 6년쯤 전 울진읍 쪽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공기가 좋고 경치가 좋은 점도 있었지만 사업특성상 큰 창고가 필요했다. 지금의 사무실 터가 마음에 들었던 규동 씨는 넓은 땅을 사면서 사업도 키우겠다는 꿈을 꿨다. 사업이 한창 잘 되고 있었다.
규동 씨는 새로 지은 사무실이 마음에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펜션같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산불이 났다. 불길이 규동 씨의 사업장 쪽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고향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규동 씨와 친구들은 주위에 탈 수 있는 물건들이나 쓰레기들을 치우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혹여나 산에서 불이 사무실 쪽으로 옮겨오면 불을 끄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규동 씨는 수도에서 물이 안 나올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불길은 생각보다 빨랐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규동 씨는 늦게나마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하나에 수천만 원씩 하는 장비를 어쨌든 들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급박했고 결국 중요한 서류만 황급히 챙겨서 대피했다.
10억 이상. 대충 눈에 보이는 금전적 피해만 10억 이상이었다. 사무실을 새로 건축하는 데만 5억 이상이 들었다. 창고에 있던 자재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다 탔다.
산불 이후 군청과 구호단체에서 나온 손해사정사가 피해 조사를 하러 규동 씨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피해 조사는 길지 않았다.
심지어 구호단체에서 나온 손해사정사는 규동 씨에게 “여기가 누구의 주택이냐”고 물어 “주택이 아니라 사무실”이라고 답하니 “그러면 지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했다.
규동 씨는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현행 제도에 따르면 소상공인에 대한 융자·보증 지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융자는 소상공인의 경우 최대 7천만 원 이내 연 2% 고정 금리, 보증은 최대 2억원 이내다. 이것 외엔 소상공인을 지원해주는 제도는 없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주택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는 직접 지원금이 나가지만 소상공인에게는 그런 게 없다”며 “그래서 재난 관련 법안이 개정될 때 중소기업·소상공인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견도 개진했다. 그러나 아직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산불이 나고 규동 씨는 쌀 두 포대와 컵라면 다섯 박스 등 식료품을 받았다고 했다. 규동 씨는 쌀과 컵라면을 모두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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