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제대로 된 추모시설을 만들자

이태원 10.29 참사 국정조사가 마무리되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수사도 종결됐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참사 피해자 유족은 수사 발표에 동의하지 않아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윗선 책임을 묻지 않는 경찰 수사 결과에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참사는 발생한 시점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참사는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분이 마무리되고, 미래에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결정하고 실천해야 겨우 첫 번째 단계의 수습이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참사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공식기억’이 돼야 피해자(유족을 포함하여 포괄적으로 피해자로 지칭한다)에게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말을 건넬 수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현장.
참사를 예비해서 막지는 못했지만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가려내며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는 것은 우리가 같이 풀어야 하는 과제이다. 이 과제는 현재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추모시설(공간)에 대해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전의 다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유족 요구가 반영되지 않고 결국 방치되는 형태로 흘러갈 것 같은 우려가 든다.
그동안 참사 추모시설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은 주민과 상인의 반대를 이유로 유족의 의사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피해 장소에 기억할만한 공간을 요구했는데 과거 어떤 참사에서도 그것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물론 추모시설 건립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 주민과 상인이 추모시설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게 주요 원인이 됐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세월호 참사 추모시설이다. ‘4.16 생명안전공원(가칭)’은 참사 5년 만에야 건립이 확정됐다. 애초에 2022년까지 건립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봉안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단원고 학생들의 교실을 재현한 '4·16 기억교실'이 있는 '4·16민주시민교육원'도 부지 선정 문제로 2020년에야 개원했다.
좀 더 오래된 추모시설 사례는 대구지하철 참사·삼풍백화점 참사·성수대교 참사 등을 들 수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관련 추모시설은 지역 주민의 반대를 넘지 못해 세 번의 장소 변경 끝에 팔공산에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확정돼 운영되고 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피해자들이 추모비라도 현장에 세워달라고 요청했지만 “주변 땅값이 내려간다”며 반대하는 민원이 많아 현장에서 6km 떨어진 ‘양재시민의 숲’에 조성됐다.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성수대교 참사 위령비는 지금은 아예 접근조차 쉽지 않다. 위령비는 사고난 지 3년 만에 강변북로 성수대교 북단 옆에 세워졌는데, 2005년 강변북로 진출입 램프 설치 이후에는 걸어서 가기 어려운 곳이 됐다. 심지어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이런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참사 추모시설을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를 정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첫째, 추모시설은 피해자 지원의 집합체여야 한다. 피해자 지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피해자 모임의 구성과 활동 지원, 피해자 일상 전반에 대한 종합적 지원, 심리 및 정신적 상처 치유 지원, 그리고 기억의 공유를 위한 기억의 수집과 기록에 대한 전면적 접근과 활용 등이다. 추모시설은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실천하는 근거지여야 한다. 서울시가 민간 건물을 임대해 추모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추모시설 역할을 할 수 없다.
둘째, 추모시설은 추모기관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기관은 기억을 미래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추모시설에 기억기관이 포함돼야 한다. 기억기관이라면 보통 아카이브(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을 말하는데, 기관의 정체성이 어떤 것이든 추모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면 된다. 참사의 기억과 기록을 수집하고, 관련 기록에 대한 피해자와 시민의 접근을 온전하게 수행하며, 참사에 대한 공식기억을 담아 전승하는 역할을 하는 기능을 하는 기관이어야 한다.
이 기억기관은 지역의 주민과 상인에게도 지지받는 것이어야 한다. 주민도 함께 사용하고 시민들이 찾는 공간이면 금상첨화다. 이태원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그곳에 복합기능을 가진 추모기관을 만드는 것이 결코 혐오 시설이 될 리가 없다. 외국인들에게 참사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수준을 추모기관으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소프트파워이다. 베를린이나 워싱턴D.C.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나 뉴욕의 ‘9·11 메모리얼 뮤지엄’처럼 그 도시의 상징적 기관이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누구도 이 기관들을 혐오시설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참사 추모기관은 공공건물이어야 한다. 적당한 공공건물이 없다면 참사 지역의 민간 건물을 매입하여 건립하는 것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추모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피해자와 주민, 그리고 상인 모두가 공감하는 추모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다면 투자하는 예산이 결코 아깝지 않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같은 사례를 적극적으로 연구한다면 훌륭한 추모기관을 건립할 수 있다.
셋째, 정부와 서울시는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약속을 이행한다는 진정성을 갖고 추모시설 건립에 임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참사에서 피해자들의 의지를 반영하지 못한 것은 순간을 모면하려는 회피 의도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과 상인들의 반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참사는 정부와 서울시의 책임이므로 추모시설의 건립도 책임져야 한다. 지역 주민과 상인이 반대한다면 이를 설득하는 주체도 정부나 서울시여야 한다.
실질적이고 다양한 지원과 대책 속에서 지역 주민과 소통도 이뤄져야 한다. 상인들에게는 세제 지원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도 있고, 지역의 묵은 과제를 해결하면서 주민을 설득할 수도 있다. 이런 종합적인 지원을 예산의 문제로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참사의 책임이 정부와 서울시에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간이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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