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2년…거꾸로 가는 국민대통합

2015년 02월 24일 19시 15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국민대통합 공약을 앞세워 야권 후보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청계천 전태일 열사 동상을 참배하고 DJ의 비서실장 출신인 한광옥 전 민주당 고문을 영입하는 등 통합 이미지를 내세운 것이 박빙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취임 2년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의 국민대통합 약속은 얼마나 이행되고 있을까.

“아버지의 잘못, 내가 바로잡겠다”...공약 이행 ‘0’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 명시된 국민대통합 관련 약속은 크게 2건이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들, 그리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다. 둘 모두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의 잘못을 자신이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러나 현재 이행된 약속은 없다. 부마민주항쟁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에 관한 법률은 취임 첫해인 2013년 국회를 통과해 심의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최근까지 고작 90여 명만이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최소 1천5백 명이 입건됐던 사실과 비교할 대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다.

이처럼 공약이 크게 축소·후퇴된 것은 법률안이 졸속으로 입법된 탓이다. 구체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30일 이상 구금된 자’를 명시한 것이 문제였다. 부마항쟁 발발은 10월 16일이었고 불과 열흘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숨졌다. 1천5백여 명의 입건자들 대부분이 이때 구류 상태에서 풀려났다. 따라서 ‘30일 이상 구금’ 규정을 충촉할 수 있는 피해자들이 거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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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 공약은 아예 첫 걸음도 떼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마지막 공동 발의했던 관련 법안은 취임 2년이 된 지금까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양춘승 긴급조치 9호 피해자모임 대표는 “아버지 시절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조금은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볼 때 역시 헛된 기대였다”면서 “이 공약은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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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위 출범시켰지만 홀대...갈등 현장과 동떨어진 활동만

공약집에 명시하진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수 차례 약속했던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취임 첫 해인 2013년 6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공식 출범했다. 첫 번째 회의를 직접 주재한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단순한 정책 자문 역할이 아니라 갈등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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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출범 1년 반이 지난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활동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국민적 갈등의 양상을 분석하고 해소 방안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비슷비슷한 주제의 토론회와 간담회, 세미나만 30차례 이상 실시했고, 지난해에는 일종의 국민의식 개혁운동인 ‘작은 실천 큰 보람 운동’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그 사이 벌어진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 현장에 직접 개입해 중재와 해결을 도모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갈등, 동남권 신공항 갈등, 가까이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국민적 갈등 등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 발표나 중재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갈등 현장을 찾은 유일한 사례는 용산화상경마장 개장을 둘러산 마사회와 주민 간의 갈등 현장이었는데, 이는 개장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서울시의 중재 요청을 받고 나서야 움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국민대통합위원회가 한 일이라곤 ‘개장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마사회의 입장을 주민대책위에 단순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 김경실 용산화상경마장 반대 주민대책위 공동대표
▲ 김경실 용산화상경마장 반대 주민대책위 공동대표

이에 대해 국민대통합위원회 관계자는 “갈등 현장에 직접 개입해 중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위원회의 역할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 자문기구인인 만큼 실행이나 집행 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요청과는 정반대의 언급이다.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국민대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했던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이 정도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은 뭘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국민대통합위원회와 문화융성위원회, 청년위원회 등 3개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신설했다(지방자치발전위원회도 신설로 분류되나 실제로는 지난 정부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의 명칭을 변경해 계승한 것임). 이들 위원회는 대략 분기별로 위원단 전체 회의를 개최하는데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불가피할 경우 추후 서면 등으로 보고를 받는다. 이후 해당 위원회의 논의 내용 가운데 정책으로 연결시킬 사안들을 찾아 국무회의 등을 통해 관계 부처에 지시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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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위원회 전체 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출범 직후였던 2013년 7월 8일 1차 회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추가로 열린 네 차례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위원회의 네 차례 회의에는 모두 참석했고, 청년위원회의 6차례 회의 가운데에도 절반인 3차례를 참석해 직접 주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 일정을 그때그때 조율하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며 “국민대통합위원회 일정을 일부러 빼거나 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모습은 국민대통합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도가 현저히 낮아져 있는 반증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기구 하나 만들어 놓는다고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대통령과 장차관들이 전향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통령의 의지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위직 3분의 1이 영남 출신... ‘지역 대탕평 인사’ 약속도 안 지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약속했던 ‘지역 대탕평 인사’도 사실상 무너졌다. 뉴스타파가 박근혜 정부 들어 임명된 총리와 장차관, 청와대 수석, 외청장 등 장차관급 고위공무원 156명의 출신지역을 분석한 결과 영남 편중 인사가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156명 가운데 서울 출신이 37명, 경기·인천 10명, 대구·경북 28명, 부산·경남 24명, 광주·전북·전남 22명, 대전·충청 30명, 강원·제주 5명이었다. 비율로 보면 영남권 인사가 33%인 반면 호남권은 1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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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전북도민일보 기자의 ‘대탕평 인사 의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능력 있고 도덕적 흠결 없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 나 만큼 관심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이런 전제조건 아래 적재적소에 인재들을 배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 중앙인사위원장 지낸 조창현 중앙대 명예교수는 “능력 중심 인재를 등용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실제로는 지역 안배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고위직 인사 실태”라면서 “바꿔 말하면 영남 이외 지역 사람들은 능력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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