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파나마 페이퍼스] ② 끊임없이 조세도피처로 가는 한국인들

2018년 06월 21일 02시 01분

지난 201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는 모색 폰세카라는 파나마 법률회사에서 유출된 데이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모색 폰세카에서 또다시 대량의 데이터가 유출됐다.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는 2016년 1차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이후에 모색 폰세카 내부에서 생산된 2년치 문건들이다.

뉴스타파는 이번에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전세계 수십 개 저명 언론사와 함께 국제 협업 취재를 진행했으며 이 언론사들과 동시 다발적으로 (한국시간 2018년 6월 21일 새벽 2시 / 워싱턴 시간 6월 20일 오후 1시) 취재 결과를 공개한다.

기사 목록
1. 파나마 페이퍼스 그 후.. "역외 유령회사 서둘러 없애달라"(링크)
2. 끊임없이 조세도피처로 가는 한국인들(링크)
3. 세계는 적극적인 수사와 세법 손질 중 ... 한국은?(링크)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에는 지난 2016년 보도 당시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한국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만들고, 여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 발견된 한국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회사는 회생 절차.. 대표 가족은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 설립

(주) 덱코는 선박 부품과 발전소 설비를 만드는 회사다. 지난 1989년에 설립돼 꾸준히 연매출 60~70억 원 가량을 올려 온 중소기업이다.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폰세카에서 이번에 새로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덱코의 이동준 대표는 지난 2016년 4월 1일, 영국령 앙길라에 Glory Star worldwide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영국령 앙길라는 카리브해 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조세도피처로 유명한 곳이다. Glory Star worldwide의 자본금은 만 달러, 이 가운데 20%는 이동준 대표 본인이, 나머지 80%는 덱코의 이사로 재직 중인 이 대표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영국령 앙길라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2016년, 덱코의 경영 상황은 무척 어려웠다. 2015년에는 영업 적자 18억 원, 2016년 영업 적자 5억 7천만 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24억 8천만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이 60~7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적자폭이다.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던 2016년 4월, 이 대표 부자(父子)는 영국령 앙길라에 자신들이 지분을 2대 8로 나눠가진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7년 말 덱코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렇게 회사가 어려운 가운데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진과 만난 이동준 대표의 아들 이 모씨는 이에 대해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이건 저희가 실수가 된 거죠. 저희가 변호사를 잘못 쓴 케이스인데 저희는 베트남에 있는 저희 담당 변호사한테 홍콩에다 법인을 세워달라고 했는데.. 홍콩에 안되면 홍콩에 안된다고 저한테 말을 해줘야 되는데, 변호사 생각은 이걸로 해가지고 홍콩에서 다시 법인을.. 이 회사의 분점 지점 같이 해서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덱코 이동준 대표의 아들 이 모씨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홍콩에 법인을 설립할 의도였으나, 자신들이 고용한 베트남 변호사가 허락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엉뚱한 브리티시 앙길라에 회사를 설립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출한 페이퍼 컴퍼니 설립 신청 문서를 보면, 이들은 회사 설립 희망 국가로 분명히 영국령 앙길라에 체크를 해두었다. 실수라는 해명을 믿기 어려운 이유다. 이들은 또 회사 설립 자금의 원천을 “개인적 저축”이라고 기재해두었는데, 회사 업무에 필요한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면서 개인적 저축을 사용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동준 대표의 아들 이 모씨는 또 문제의 페이퍼 컴퍼니로 어떤 은행계좌도 열지 않았으며, 조세도피처라는 점이 문제가 될 것 같아 곧 폐쇄했다고 해명했다. 다른 해외 지사도 많기 때문에 재산을 빼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굳이 영국령 앙길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해외 지사가 있는 나라에서 법인을 만들거나 계좌를 개설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주주와 계좌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주는, 그래서 조세도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앙길라와 다른 정상적인 나라와의 차이를 도외시하는 해명이다.

이들이 브리티시 앙길라의 페이퍼 컴퍼니를 폐쇄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2017년 말, 따라서 페이퍼 컴퍼니가 존속한 기간은 1년 8개월 정도다. 이 1년 8개월 동안 이 조세도피처 회사를 이용해 무엇을 했는지는 수사기관이나 조세당국이 조사하기 전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왜 만들었나 질문에 ‘묵묵 부답’ 중소기업 대표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한국광성전자는 자동차 오디오 부품 등을 만들어 해마다 수십 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다. 과거에는 코일 생산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 회사 양재성 대표는 지난 2012년  대표적인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은 Best Marbles Investment 베스트 마블 인베스트먼트. 발행 주식은 단 한 주 뿐인데 이 한 주의 주식을 양 대표가 소유하고 있다.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한국광성전자 관계자는 페이퍼 컴퍼니 설립 서류에 있는 서명이 양재성 대표의 것이 맞다면서도 회사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한국광성전자의 공식적인 업무와 관련해 설립한 자회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양 대표가 제출한 페이퍼 컴퍼니 설립 신청 서류에는 자금의 원천에 대해, “전자 부품을 만들어 생긴 사업 수익”이라고 적혀 있다.  회사의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건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양 대표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2012년은 덱코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한국광성전자가 경영난을 겪고 있던 시기다. 뉴스타파는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는 양재성 대표에게 질문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광성전자 관계자는 양대표에게 질문을 전달했다고 취재진에게 전해왔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양 대표로부터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영국 게임 회사의 복잡한 사정

엔서스 랩은 온라인 슬롯 게임을 만들어 운영하는비상장 벤처기업이다. 엔서스 랩은 지난 2014년 한국인들이 창업한 회사지만 2016년 영국계 자본에 인수됐고, 이후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등록됐다. 이번에 유출된 모색폰세카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김만수 씨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Nsus 그룹의 주주이자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영국계 자본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조세도피처에 법인을 설립한 뒤 김만수씨의 이름을 주주와 이사로 등재한 것으로 보인다.

모색 폰세카 유출 문서를 통해 드러난 이 회사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Nsus Group의 자회사로 GG 네트워크가 있고, 다시 그 자회사로 Nsus 인터랙티브라는 회사가 만들어졌는데, 이 회사들의 등록지는 모두 조세도피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다. 실제로 카지노 슬롯게임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는 출자 고리의 말단에 있는 Nsus 인터랙티브인데, 이 회사는 영국과 네덜란드령 퀴라소에서 게임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온라인 카지노 슬롯게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Nsus 인터랙티브에게 들어간다. 이 말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모두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수익은 버진 아일랜드 안에서 복잡하게 설계된 구조를 통해 분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역외 탈세의 전형적인 설계와 유사하다.

※ 참고 기사: 성공을 위한 레시피 - 비밀 소스를 숨겨 거액을 챙기는 법

뉴스타파는 엔서스 랩 측에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복잡한 구조를 설계한 이유에 대해 문의했다. 엔서스 그룹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대해, 이런 구조는 영국 변호사들의 조언에 따라 만든 합법적인 구조이며 업계의 관행이라고 답했다. 또 영국에서는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력해 어떤 조세회피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 파나마 페이퍼스 2관왕 중소기업 대표도

반도체의 포장 용기를 만드는 중소 기업 에스엔지 컴퍼니의 원성역 대표는 지난해 뉴스타파와 ICIJ가 공동으로 취재한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보도 당시에도 이름이 나왔던 인물이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보도는 버뮤다 법률 회사 애플비의 자료가 대량으로 유출됨으로써 촉발된 보도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유출된 모색 폰세카 데이터에서 원성역 대표의 이름이 또 나왔다. 버뮤다와 파나마의 역외 페이퍼 컴퍼니 전문 법률회사에서 동시에 이름이 나온 ‘2관왕’인 셈이다.

유출 자료에 따르면, 원 대표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피크 차이나 프로퍼티라는 회사에 지난 2008년부터 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에스엔지 컴퍼니측은 지난 2008년 피크 인터내셔널이라는 외국의 경쟁 업체를 인수했는데, 피크 차이나 프로퍼티는 그 자회사 가운데 하나여서 자동으로 인수를 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원 대표가 이사로 등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뉴스타파의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보도 이후 국세청으로부터 두 달 이상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신고하지 않은 해외 법인의 소득에 대해 2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35명 발견… 14명 신원 확인

지난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당시, 뉴스타파는 한국인 19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보도 당시에도 한국인이 2백여 명 나왔다. 이렇게 지속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조세도피처를 악용하는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계속 나오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에서 이들을 포함한 한국인 35명을 발견했고, 이 가운데 주소가 한국으로 되어 있는 20명을 추린 뒤 14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조만간 이들의 명단을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 : 심인보, 김지윤, 임보영
촬영 : 최형석, 김기철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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