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문제가 나올지 알고 있다"...성대 미대 실기 문제 유출

2020년 12월 23일 09시 00분

지난해(2019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성균관대 미술학과 실기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성균관대 미술학과 출신의 한 미술학원 강사가 시험 3일 전부터 2명의 모델이 나온다며 집중적으로 실기를 지도했고, 시험 당일 아침에는 “수면바지 나오니, 털 느낌 내라”는 정보까지 수험생에게 전달됐다. 뉴스타파는 성균관대 미술 실기 문제 유출의 내용이 담긴 수업 녹음파일과 문자 메시지를 입수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녹음 파일은 성균관대 미술학과 실기시험을 3일 앞둔, 지난해 1월 12일부터 14일까지의 대화 내용이다. 이 녹음파일에는 학원 강사가 수험생들에게 지도한 내용, 원장과 수험생의 대화 등이 담겨 있다.  

시험 사흘 앞두고 "모델 2명 나온다" 집중 연습..."시험 전날에는 자리배치"

입시 실기 시험 문제가 유출된 곳은 경기도 성남의 한 M미술학원이다. 지난해 1월, 이 학원에서 성균관대 미술학과 정시모집 실기 전형을 사흘 앞두고 모델로 2명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다음은 성균관대 실기 시험을 준비하던 이 학원 수강생 A씨가 미술학원장과 시험을 사흘 앞두고 나눈 대화다.
수강생 A씨: 궁금한 게 있는데, (모델) 2명 나오는 거 있잖아요. 진짜 2명 나오는 거에요. 100%? 
학원장: 생각해봐, 모델을 미리 섭외해야할 거 아니야. 시험 당일날 모델을 뽑게 할 수가 없어요. 말이 된다고 생각해?수강생 A씨: 말이 될 수도 있죠. 
학원장: 시험 당일에 어떻게 갑자기 모델을 섭외해. 말이 안 되지. 섭외 때문에 모델이 2명인 걸 미리 알았던 거야. 

M미술학원 원장과 수험생 A씨와의 대화(2019. 1. 12)
원장은 곧바로 어떤 경로를 통해 시험 문제가 유출됐는지 실토했다. 바로 당시 이 학원의 보조 강사로 일하던 강 모 씨가 실제 실기 시험의 모델로 선정됐다는 것. 강 씨는 이 학원 출신의 성균관대 미술학과 학생이었다. 그러면서 원장은 A씨에게 “이 문제는 심각한 부정행위”, “문제 유출”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시험을 이틀 앞두고 이 학원의 강사 신 모 씨가 성균관대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두 명의 모델을 그리는 연습을 시켰다. 신 씨는 학생들에게 "시험 당일이 되면, 모델의 자세까지 알아내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신 씨는 당시 모교의 겸임 교수도 맡고 있었다.
학원강사 신 씨: 성대반은 (모델) 2명 안 해보고 나오면 우르르르 무너지는 거야, 광탈하는 거야. 오늘, 내일 시험 전까지 (모델) 2명만 계속할거야. 자세는 그날 아침에 알려줄게. 내가 아침에 알게 된 적은 되게 많아. 

M미술학원 강사 신 모 씨 수업 대화(2019.1.13)
실기 시험 하루 전, M미술학원 강사 신 씨가 학원생들에게 수험번호를 보내라고 한 뒤, 자리를 배치하는 장면. 실제 시험에서도 모델의 배치가 유사했다. 
시험 하루 전날,  강사 신 씨가 학생들에게 수험번호를 보내라고 말했다. 수험번호를 받은 신 씨는 잠시 뒤  학원 내 학생들의 자리 배치를 바꾸라고 지시했다. 2명의 모델을 한 가운데에 두고, 주변에 학생들이 앉아 시험을 보는 구도였다. 신 씨는 "이런 자리 배치가 실제와 맞을 확률이 70%"라고 말했다. 
학원강사 신 씨: 지금 수험번호 나한테 보내봐. 
학생들: 지금 핸드폰 없는데...
학원강사 신 씨: 지금 (자리) 바꾸라는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거야. 
학생들: 내일 두 명이 나오면 진짜 복잡한 감정이 들 것 같아.
학원강사 신 씨: 지금 자리를 내가 대충 정했잖아. 내일 모델이 아마 이런 식으로 될 거라고. 완전 삥 안 돌거고...아까 자리 정해줬잖아. 수험번호대로 맞춰서... 아닐수도 있는데 맞을 확률이 70%, 이쪽 자리가 나올 확률이.

M미술학원 강사 신 모 씨 수업 대화(2019.1.14)

D-DAY...시험 40분 전, 겸임교수의 카톡 "수면 바지 나오니 털 느낌 내줘라"

시험 당일 아침, 강사 신 씨는 수험생 A씨에게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수면바지 나오니 털 느낌 내줘라"는 내용이었다. 시험 시간까지 40분 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뉴스타파는 신 씨의 말대로 문제가 출제됐는지, 2019년 성균관대 미대 입시의 실기 시험 작품을 확인했다. 미술 입시 관련 사이트에 실기 시험 문제가 그대로 올라와 있다. 학원에서 알려준 것처럼 2명의 모델이 등을 맞대고, 의자에 앉아 있는 문제였다. 2명의 모델은 신 씨가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수면 바지를 입고 있었다. 
2019년도 정시모집에서 성균관대 미술학과는 수능 60%와 실기시험 40%를 반영해 신입생을 뽑았다. 실기 시험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워,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비율이다. 때문에 실기 시험을 앞두고 미술 학원들은 쪽집게 수업을 해주고 거액의 수강료를 챙긴다. 이 미술학원은 수능 이후 치러지는 실기 시험 준비에 수강료로 1인당 600만 원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당시 성균관대 미술학과 전형을 치렀던  A씨를 만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시험 준비에 모든 옷들 하나하나씩 다 연습을 다 해봐요. 일단 뭐가 나올지를 모르니까. 그런데 시험 전에 문제가 뭐가 나올지를 알면 적어도 시험장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에게 한 번 더 물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가 그렸던 그림이라도 찾아볼 수 있죠. 어떤 느낌었는지,  어떤 점을 지적받았는지 찾아볼 수도 있잖아요. 

성균관대 미대 문제 유출 신고자 A씨
유출된 시험 문제를 고스란히 전달받았지만 A씨는 시험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고 했다. 눈 앞에서 입시비리를 목격한 충격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출된 문제를 전달받은 이 학원 수강생 가운데 합격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제가 최순실 아들도 아니고, 높으신 분 아들도 아니고 저는 학원 다니던 평범한 학생인데, '진짜 입시 비리' 뉴스에서만 보던 이런 순간이구나 생각했죠. 또 '이렇게 해서 성대에 가면 뿌듯할까?', 이런 생각을 했죠. 모델 주변을 동그랗게 애들이 앉아서 다 같이 그림 그리는 그 순간에, 이 문제 미리 알았던 애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애들 중에서 저만 문제를 미리 알고,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비겁하게.

성균관대 미대 문제 유출 신고자 A씨
A씨는 지난해 2월, 이 일을 성균관대 입학처와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신고 내용을 조사한 성균관대의 입학전형 공정관리위원회는 지난해 3월 강사 신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신 씨는 업무 방해 혐의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금도 영업 중인 문제의 학원을 찾아갔다. 뉴스타파와 만난 학원장은 문제 사전 유출을 몰랐다고 부인했다. 학원장은 “2명이 모델로 나온다는 것은 기출문제였기 때문에 추측했던 것 뿐”이라며 “자리 배치 문제도 대략 몇 번부터 몇 번까지 수험장에 들어갈 것이라는 걸 유추했고, 실제 시험장 배치와 달랐다”고 주장했다. 당시 성균관대 겸임 교수이자 문제 유출 당사자 신 씨는 뉴스타파의 취재를 거부했다.
성균관대는 입시 문제 유출에 대해 “경찰 수사를 통해 수면 바지 문자 이외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학생이었던 시험장 모델 강 씨와 관련해서는 “대학 내 절차에 따라 조치하였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규정상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학교 측 전형 관리의 공정성에는 하자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제 유출 강사 "원래 학원 나가는 애들 안 돼"...그럼에도 학교는 "하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 측의 주장대로 하자가 없었을까. 뉴스타파는 성균관대의 '입학전형 운영규정'을 살펴봤다. 이 규정에는 입학 전형에 참여하는 학교 구성원의 제한 사항을 두는 조항이 있다. 바로 ‘제3장 입학전형 회피 및 제척’. 이 조항에는 “모든 지인 중에서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해칠 수 있는 경우 자진 신고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학원 보조강사이면서 실제 실기 모델이었던 강 씨는 수험생들과는 지인관계로 볼 수 있다. 즉 자진신고 대상이지만 강 씨와 문제 유출 당사자인 신 씨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시험 문제 유출 녹음파일에는 '보조강사 강 씨가 실기 모델로 나가는 일이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학원강사 신 씨: OO샘 (실기시험) 모델로 나오는 거 알아? 얘기 들었어? 
학생들: 성대? 진짜요? 
학원강사 신 씨: 원래 안 되는데, 얘기를 안 해주지. 원래 학원에 나가는 애들은 안 돼.
학생들: 모델도 모르지 않나요?
학원강사 신 씨: 모델도 모르지.
학생들: 완전 반갑겠다.
학원강사 신 씨: 어제 그래서 일부러 OO샘 (연습 모델로) 세운 거야.

미술학원 강사 신 모 씨 수업 대화(2019.1.13)
성균관대는 미대 문제 유출을 확인한 후인 올해 3월, 교육부 지침(대학 입학전형 회피·배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근 3년 이내에 수험생을 가르친 사람은 입학전형에 참가할 수 없다”는 내용을 입학전형 운영규정에 추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당사자의 자진 신고에 의존하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
제 3 장 입학전형 회피 및 배제1. 회피를 위한 자진신고 대상은 본인 또는 배우자가 본교 입학전형에 지원한 수험생과 민법에서 정한 친족 관계에 있는 경우이거나, 본교 지원 수험생을 최근 3년 이내에 학교(고등학교, 학력인정 학교 등)에서 교육한 경우이거나 학원교습 또는 과외교습을 한 경우이거나, 그 밖에 사회통념상 공정한 업무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한다.

성균관대학교 입학전형 운영규정(2020. 03. 01)
제작진
촬영기자이상찬 신영철
편집기자박서영
CG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