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직보’ 의혹 여론조사 당일… 명태균, 아크로비스타 인근 호텔 예약
2024년 11월 05일 20시 27분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국정원 심리전단에게 인터넷 포털과 트위터 등에 정치관여와 선거개입 글을 올리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이 있은지 1년 10개월만에 내려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첫 번째 판단이다. 이번 선고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으로, 판결 내용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었다. 검찰은 지난 7월 결심공판에서 ‘국정원의 사유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 서울중앙지법은 11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내부의 ‘전부서장 회의’, ‘모닝브리핑’ 등의 회의 자리에서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한 발언이 요약, 정리돼 심리전단에 하달됐으며 이 내용에 따라 심리전단 직원들이 활동한 사항이 체계적으로 보고, 관리되는 등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 관여 행위가 있었던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정원의 정치 관여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정보원법 9조를 위반한 것으로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죄를 저질렀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핵심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요 공소내용.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행위자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확인돼야 하지만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의 근거로 △직접적으로 대선 개입을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발언을 찾을 수 없는 점, △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이 대선 시기와는 무관하게 계속적, 반복적으로 이뤄진 점, △ 대선 시기에 임박해 심리전단의 트윗 및 리트윗 수가 오히려 감소하는 점, △ 심리전단 사이버팀의 증편을 선거운동에 이용할 목적으로 볼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는 이상 검찰 공소사실에는 적시되지 않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지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내세웠다.
재판부의 논리는 이렇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내용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 재판부는 심리전단의 트윗계정 175개, 트윗 11만 여건만을 증거로 최종 인정했다.
재판부에 의해 최종적으로 증거로 인정된 심리전단 직원들의 트윗 계정수는 175개. 이 가운데 93개는 이미 지난해 뉴스타파가 파악해 보도한 것들과 일치한다. 당초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1157개의 계정에서 작성한 78만여 건의 트윗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해당 계정이 국정원 직원의 것으로 확인되지 않거나 검찰의 증거수집 과정이 위법했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증거에서 배제됐다. 당시 뉴스타파가 확인한 트윗 내용에는 △박근혜 후보 후원 계좌 안내 △‘문재인이 대통령이 안되는 이유’, △ ‘안철수는 종잡을 수 없다’ 등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지지, 비방의 내용들이 담겨있었다.
▲ 뉴스타파는 지난해 이미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작성된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비방 트윗을 확인해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상급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이 민주당의 재정신청 사건을 처리하며 내렸던 판단과도 다른 것이다. 지난해 9월 민주당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하자 이에 반발해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이에 서울고법은 ‘국정원 내의 위치와 가담 정도를 고려할 때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피의사실에 대한 기소가 필요하다’며 이 전 차장과 민 전 단장 두 사람에 대한 기소를 검찰에 명령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윤석열 특별수사팀장 교체, 수사팀 와해 등 수사단계부터 외압에 시달려 온 검찰 특별수사팀 내부에서는 재판부가 검사의 입증 부족을 탓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의 공소 근거가 모두 인정된 상황에서 공직선거법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검찰의 증거 부족이 아닌 재판부의 법리 판단 문제로 봐야 맞다는 것이다. 또 국정원법을 적용하는 범위가 더 엄격하기 때문에 국정원법 위반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선거법 위반도 해당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검찰 내부사정에 밝은 법조인들은 수사팀이 어려운 상황 속에 재판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대법 판결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 성향의 일간지들은 일제히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탓하고 나섰지만 검찰의 내부사정에 밝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외풍’, ‘외압’ 등 어려운 상황에서 검찰이 재판을 이어나가고 있으니 대법 판결까지 지켜보는 것이 맞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별수사팀을 공중분해 시켜놓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실명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번 판결은 법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원지법 김동진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법원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A4용지 5장 분량의 강도높은 비판 글을 올렸다. 그는 ‘선거 개입과 관련없는 정치 개입이라는 것은 궤변이다’며 이번 판결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 가득한 판결’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직 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극히 드문 일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김 판사의 글을 바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이번 판결은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해진 결론에 짜 맞춘 것이라고 비판했다.
항소심에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개인적 일탈이었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른 조직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국정원 심리전단의 이른바 ‘방어심리전’ 활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국정원이 법리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보기에는 입증이 불충분하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친 행위’를 했다고 볼 소지는 있다고 판단한 만큼 검찰이 항소 때 법조항을 조정할 경우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관건은 사실상 와해된 상태의 검찰 수사팀이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항소심을 준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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