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세 개의 길, 그리고 밤 10시 13분

2022년 11월 24일 20시 00분

158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를 부른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과 부조리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전면에 나서길 주저했던 유가족들도 서서히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조직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날의 참사가 발생하게 된 구체적 과정과 경위는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26일째 수사에도 불구하고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인파가 몰린 상황에서 정확히 언제 어느 지점에서 누가 어떻게 넘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깔려 압사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가장 알고 싶은 사실관계다.
특히 다수 사람들이 쓰러지며 깔리게 된 정확한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까지 정부가 공식 발표한 사고 발생 시점은 소방당국이 119 신고전화를 접수한 밤 10시 15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술 골든타임이 ‘4분’이라는 점에서, 정부 발표보다 단 몇 분이라도 이른 시각에 사고가 발생했다면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그 몇 분의 시간 동안 수십 명의 생명을 더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생존자와 현장 상황을 가까이에서 접한 핵심 목격자, 그리고 구조에 참여했던 시민 등을 만나 그날 참사의 구체적인 경위를 분 단위로 재구성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참사 발생 시점이 정부 공식 발표보다 2분 정도 빨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28살 이현지(가명) 씨는 현재 한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골반과 다리를 크게 다쳐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현지(가명) 씨
현지 씨는 지난 10월 29일 밤 친구 2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밤 9시 31분 이태원역 3번 출구 부근에서 내렸다. 대로변에도 인파가 워낙 많아 횡단보도를 건너 해밀톤호텔 앞인 2번 출구 앞까지 가는 데만 10분 이상 소요됐다. 세계음식문화거리로 올라가 해밀톤호텔 뒷길로 진입한 건 9시 49분쯤. 그런데 그때부터 예년의 이태원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 9시 49분 이현지 씨 위치와 현장 모습
성인이 된 2014년부터 매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왔었어요. 해밀톤호텔 뒷길이 메인스트리트거든요. 그런데 보통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걷거나 우측통행을 하면서 마음에 드는 코스튬을 입음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 정도의 최소한의 여유와 질서는 있었는데, 올해는 메인스트리트로 들어서자마자 그게 유지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 9시 52분 이현지(가명) 씨 위치와 셀카 사진
실제로 9시 52분에 데이앤나이트 클럽 앞에서 현지 씨 일행이 촬영한 셀카에는, 셔터가 눌리는 순간 뒷쪽 사람들 때문에 크게 휘청이는 모습이 남아 있었다.
도저히 사진을 못 찍겠는 거예요. 폰을 들고 손을 앞으로 뻗을 수도 없었어요. 이럴 거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됐지만, 그래도 메인스트리트 끝까지는 어떻게든 걸어가 보자고 생각했어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여길 지나갈 수 있는 거야?"

초등학교 교사인 이민주(가명) 씨도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 이태원 친정에서 저녁을 먹은 뒤 고등학교 1학년 딸과 함께 축제 현장을 찾았다.
▲ 이태원 참사 목격자 이민주(가명) 씨
9시 44분쯤 세계음식거리 서쪽 입구로 진입했다.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처음엔 걷는 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분만에 앞으로 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대략 화로 이태원점, 그 정도까지는 자유롭게 걸어갈 수가 있었어요. 사람들 춤추는 거 사진도 많이 찍었고. 거기까진 우측통행이 됐거든요. 그런데 점점 앞으로 못 나간다 싶더니 아예 우측통행이 안 되더라고요.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9시 46분 이민주 씨의 딸이 촬영한 영상 속에 골목 안에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이 모습이 담겼다. 민주 씨와 딸은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느냐고 생각하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이걸 과연 지나갈 수가 있는 거야?", "망했다~!"
▲ 9시 51분 이민주(가명) 씨 위치와 현장 모습
9시 51분, 민주 씨와 딸은 새마을회관 주점 앞까지 이동했다. 이젠 사람들 틈에 끼인 채 제자리에 서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조금 두려워졌다. 결국 10시쯤 민주 씨는 딸의 손을 끌고 거리 오른쪽의 해밀톤포차 주점 앞으로 이동했다. 주점은 입구 외부로 비닐 천막을 확장해서 영업 중이었다. 민주 씨와 딸은 일단 비닐 천막 출입문 앞에 서서 몸을 피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전철역으로 가자"

그 무렵 이현지(가명) 씨와 친구들은 힘겹게 해밀톤호텔 삼거리에 다다랐다. 이미 곳곳에서 사고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었다.
▲ 밤 10시경 해밀톤호텔 뒷길 삼거리에 다다른 이현지(가명) 씨
사람들끼리 딱 붙어서 이리저리 밀리는데 양 옆이 다 가게와 벽이잖아요. 피할 공간이 없었어요. 비명 지르고 발 밟히고 눌리고, 말도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이미.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삼거리를 조금 넘어섰을 때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현지 씨 일행은 더 이상 앞으로 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 10시 3분경 가던 길을 되돌아 이태원역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이현지 씨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또 한 친구가 집이 되게 멀어서 지하철 막차가 10시 30분이기도 했어요. 반대쪽에서 밀고 오던 인파가 흐름이 더 세 보이길래 그 흐름을 타고 돌아가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유턴을 하기로 하고 핸드폰을 봤을 때가 10시 3분이었어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현지 씨 일행은 방향을 돌려 이태원역으로 내려가는 골목길로 힘겹게 진입했다. 10시 7분경이었다. 인파와 오른쪽 벽 사이에 끼인 채 조금씩 발을 떼고 있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외쳤다.
▲ 10시 7분경 이태원역 방향 내리막 골목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현지 씨
골목 꺾이는 부분에서 갑자기 누가 "사람이 바닥에 있다", "오지 말라" 이렇게 외치는 거예요. 밟히니까 오지 말라고. ‘어, 이게 뭐야?’ 생각이 들었고 주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바닥에서 한 여성이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일어나더라고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압사 당하게 생겼어요"...11번째 112 신고

딸과 함께 주점 앞에 서 있던 이민주(가명) 씨는 밀려오는 인파에 위협을 느끼고 결국 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 10시 8분경 이민주(가명) 씨 위치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자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112에 신고전화를 걸었다. 10시 9분이었다. "여기 압사 당할 거 같아요. 다들 난리 났어요." 신고 전화를 마친 10시 11분,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주점 안으로 밀리다시피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꾸 저처럼 들어오니까 주점 주인이 손님 아닌 분들은 나가달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바깥 상황을 몰라서 그랬겠죠. 어쨋든 나가라니까 또 나가야 되잖아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거기서 나가는 데도 시간이 적잖이 걸렸어요.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민주 씨와 딸은 다시 인파 속에 휩쓸렸다.

10시 13분 47초, 클럽 입구 CCTV에 넘어지는 사람 포착

10시 10분 무렵 해밀톤호텔 삼거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몰려든 사람들이 꽉 끼어 오도가도 못하며 물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간간히 이태원역 방향 내리막길 쪽으로 균형이 무너지며 사람들이 크게 밀려 내려갔다. 
▲ 10시 10분경 해밀톤호텔 뒷길 삼거리의 모습
내리막길 오른쪽에는 지하클럽의 입구가 있었다. 건물 안쪽으로 움푹 패인 구조였다. 떠밀려 내려오던 사람들 중 오른쪽에 위치한 사람들은 갑자기 공간이 넓어진 탓에 클럽 입구로 튕겨지듯 밀려 들어갔다.
▲ 이태원역 방향 내리막길 오른쪽의 108클럽 입구
클럽 입구에 있던 직원들도 위험을 직감했다. 떠밀려 들어온 사람들 수십 명을 지하 공간으로 피신시켰다. 그러던 도중, 결국 일이 벌어졌다.
10시 10분 조금 지나면서 한두 명씩 “밀지 마세요, 밀지 마세요”하고 소리 지르는 걸 들었어요. 그런데 소리 지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고, 갑자기 ‘우르르’하면서 사람들이 뒤엉켜 쓰러졌습니다.

이상현 / 이태원 108클럽 직원
이 상황은 클럽 입구에 달린 CCTV에 모두 녹화됐다. 그러나 클럽 측은 참혹한 장면이 너무 많다며 CCTV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클럽 입구에서 행인 1명이 넘어지면서 이를 뒷사람이 붙잡아주려는 장면이 정확히 10시 13분 47초에 포착돼 있었다고 취재진에 밝혔다. 그로부터 수 초가 지난 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고 발생 시각은 정부의 공식 발표인 10시 15분보다 2분 가까이 빨랐다고 볼 수 있다.
내리막길 오른쪽 벽에 붙어서 내려오고 있던 이현지(가명) 씨도 자기 앞에 가던 사람들 20여 명이 차례로 엎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큰일 났다고 생각한 순간 현지 씨도 그 위로 넘어졌다. 처음엔 팔다리로 지탱하며 웅크린 자세로 버텼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119에 신고를 하려던 순간, 등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현지 씨를 덮쳤다. 현지 씨는 그대로 고꾸라지며 깔렸다.

클럽 직원들의 안간힘

클럽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직원 28살 이상현 씨는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놀라고 당황했다. 일단 바로 앞에 깔린 사람들 몇 명을 있는 힘껏 끌어당겨 빼냈다. 그리고 지하 클럽에 있던 직원들에게 연락했다. 직원들과 손님들이 급하게 위로 올라와 사람들을 구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위쪽의 인파들을 향해 물러나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제가 깔려서 오른쪽 다리가 아파도 상황은 다 보였어요. 깔린 사람들 더미의 남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북쪽 인파를 향해 “뒤로! 뒤로!” 이렇게 외치기도 했는데 그게 효과가 없으니까 얼마 못 가더라고요. 클럽 가드들도 사람 깔렸다고, 오지 말라고 엄청 크게 소리를 지르는데도 위에서 계속 내려왔어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 108클럽 입구에서 깔린 사람들에게 물을 뿌려주는 직원들과 이현지(가명) 씨의 위치(붉은 동그라미)
불과 몇 미터 아래, 수백 명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었지만 윗쪽 삼거리는 계속 인파로 채워졌다. 깔려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클럽 직원은 생수를 들고 나와 얼굴에 뿌려주며 실신한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깨웠다. 이현지(가명) 씨도 정신을 잃었다가 클럽 직원들이 뿌려준 물을 맞고 깨어났다.
'죽지 말아야 된다, 그러면 지금 할 수 있는 게 딱 숨을 쉬자, 의식 잃지 말자…' 그래서 숨을 쉬려고 하는데 안 쉬어져요. 호흡을 할 만한 공간이 없어요. 그냥 정말 ‘학…’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쉬려고 하는 거예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경찰과 소방대원 도착했지만

10시 19분부터 경찰관들 몇 명이 잇달아 현장에 도착했다. 앞쪽에 깔린 사람을 빼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태원파출소 김백겸 경사는 윗쪽 삼거리의 인파를 해산시키고 뒤에서부터 들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골목길을 달려 내려가 해밀톤호텔 정문과 후문을 관통해 위쪽 삼거리 인파들 속으로 들어가 외쳤다. "사람이 깔려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다 이쪽으로! 제발 도와주세요!" 하지만 절실한 외침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버렸다. 10시 28분이었다.
▲ 해밀톤호텔 뒷길에서 인파를 해산시키고 있는 이태원파출소 김백겸 경사
10시 29분, 사고 현장에 소방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역시 앞쪽 사람부터 빼내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후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사고 현장 위쪽 삼거리로 직접 접근했다. 그러나 많은 인파를 뚫고 가느라 현장 도착은 지연됐다.

불과 10미터 위에 있었지만..."전혀 몰랐어요."

딸과 함께 주점에서 나와 다시 인파에 휩쓸렸던 이민주 씨는 10시 29분쯤 가까스로 삼거리의 한 클럽 입구에 다시 붙어서서 몸을 피하고 있었다. 이태원역 방향 내리막길이 바로 보이는 위치였고 사람들이 깔려 있는 곳과는 불과 10미터 거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빼곡한 인파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10시 29분 이민주 씨 위치와 현장 모습
제가 여기 있다가 멍청하게 막 동영상을 찍었어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 너머가 전혀 안 보였고, 그러니까 그 전처럼 사람들 모습을 막 찍은 거예요.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삼거리로 다수 진입하면서 10시 40분을 넘겨서부터는 인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민주 씨는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조금씩 알게 됐다.
초반에는 ‘뭐야? 뭐야?’하면서 그냥 서 있었고, 나중에는 실신한 사람이 한두 명 나오다가 10명이 나오다가 20명이 나와요. 이 뒤쪽으로 계속 사람들이 실려서 올라오는데 그냥 방치되어 있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소방대원들한테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심폐소생술을 해야 된다”고 그래요.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 소방대원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이민주(가명) 씨
초등학교 교사여서 매년 5시간씩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이민주(가명) 씨도 급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심폐소생술을 도왔지만, 이미 때를 놓친 사람이 더 많았다.
처음에 심폐소생술을 해드린 여자 한 분은 정신을 차리시더라고요. 갑자기 몸을 퍼드득거려서 일으켜줬더니 막 숨을 가쁘게 쉬셔서, 딸 아이한테 이분 물 좀 드리라고 하고 저는 또 뛰어가서 다른 분 심폐소생술 하고, 하여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안 일어났어요. 아무도.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지하클럽 입구에 깔렸던 이현지(가명) 씨는 11시쯤 구조됐다. 숨 쉬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의 오른쪽부터 사람들이 하나씩 들려나가는 걸 느꼈다. 온 힘을 다해 “저 아직 안 죽었어요! 저 살아 있어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주변에 함께 깔려 있던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실려 나갔다.
쓰러져 있는 동안 많은 소리를 들었을 거 아니에요. 제 머리 바로 위에서는 남자 두 명의 목소리를 들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구조될 당시엔 그 남자 두 명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희생자 추모 공간

158명의 희생,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

소중한 158명의 삶이 그렇게 이태원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도 상처가 남겨졌다.
▲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현지(가명) 씨
극적으로 구조된 이현지(가명) 씨는 자신이 입은 부상보다 처참한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클럽 직원들의 받았을 충격과 심리적 상처를 더 걱정했다.
거기 깔려 있는 동안 저는 함께 깔린 사람들의 얼굴을 보진 못했어요. 제 눈에 보인 건 다른 사람들이 내뻗는 수많은 팔들, 내 머리 위로 내뻗는 팔, 내 옆으로 내뻗는 팔, 그리고 비명과 절규 소리였어요. 하지만 깔린 사람들 앞에 있던 클럽 직원들 몇 명에게는 고통스러워 하는 수십 명의 얼굴이 보였을 거 아니에요. 클럽 입구가 사람들 머리로 빼곡하고 수많은 팔들이 자기를 행해 내뻗고 있고 그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살려달라”, “내 손 잡아달라”, “저 죽을 거 같아요” 외치고 있고, 그분들의 시야는 그랬겠죠. 저야 골반과 다치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분들은 정말 빨리 심리치료를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현지(가명) / 이태원 참사 생존자
▲ 이태원 108클럽 직원 이상현 씨
반대로 클럽 직원들은 구조된 사람들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 여자 분이 계속 몸과 머리가 눌리니까 제 몸을 붙잡고 “머리 좀 받쳐 달라”고 하셔서 제가 허벅지로 받쳐 드리고 구급대원을 기다렸어요. 그분이 꼭 살아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상현 / 이태원 108클럽 직원
▲ 딸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목격자 이민주(가명) 씨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 딸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줘야 하는 엄마도 있다.
아이한테는 너무 힘든 경험인 거잖아요. 정말 괜찮은 건지 모르겠는데, 제 앞에서는 그냥 괜찮다고만 해요. 그러면서도 자꾸 밤에는 혼자 안 잔다고, 저랑 같이 자겠다고…

이민주(가명) / 이태원 참사 목격자
이 모든 상처들이 모여 공동체의 아픔으로 남겨졌다. 그날 공동체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지를 우리가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으면 이 아픔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는지 모른다. 
제작진
영상취재정형민,김기철, 이상찬
영상편집박서영
그래픽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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