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그랜드호텔 대표의 '다잉 메시지'

2021년 09월 19일 16시 00분

20년 넘게 부산 해운대의 대표 숙박시설 중 하나였던 해운대그랜드호텔. 지난 2017년 최고등급인 5성급으로 인증받았던 호텔이 불과 2년 만인 2019년 갑작스럽게 폐업했다. 300여 명의 호텔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대부분이 명예퇴직을 했으나, 10여 명의 노조원들은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주장하며 이 호텔의 주인인 러시아 출신 손련화 씨와 허세르게이 부부와 맞서고 있다. 
부산 해운대를 대표하는 숙박시설이었던 해운대그랜드호텔은 현재 내부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출신 허 세르게이와 손련화 부부가 지난 2007년 사들인 이 호텔은 지난 2017년 5성 인증을 받으며 최고급 호텔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2년 만인 지난 2019년 12월, 갑작스럽게 폐업을 결정했다. 
지난해 9월, 뉴스타파는 손련화와 허 세르게이 부부의 의혹을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이 보도에서  ▲이들의 러시아 밀수 단체 연루▲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자금 세탁 ▲법무부 국적 취득 시험지 유출 ▲호텔 고의 적자 및 위장 폐업 의혹을 제기했다. 손련화 부부는 뉴스타파 보도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뉴스타파는 1년이 넘는 후속 취재를 통해 허 세르게이와 손련화 부부가 2007년 호텔을 사들일 당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백억 원대 자금을 불법으로 들여온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들이 자금 세탁 혐의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추가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세무공무원에게 1억 5천만 원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손련화 씨의 뇌물공여 사건의 약식 결정문에서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이 손련화 씨를 고의 적자 혐의로 지명수배한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해운대그랜드호텔 노조는 지난해 3월, "폐업을 위해 고의로 적자를 내고 남편과 딸에게 이유없이 월급을 지급했다"며 손련화 부부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최근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손련화 부부의 횡령·배임혐의가 인정되나 이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어 기소를 중지하고 지명수배한 상태라고 노조에 통보했다. 

스스로 목숨 끊은 손련화 동업자의 '다잉 메시지'  

해운대그랜드호텔 대표 김 씨가 생전에 사용하던 휴대폰. 이 휴대폰에는 김 씨가 숨지기 직전, 지인들과 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 씨 유족은 김 씨 죽음의 이유과 그 진실을 찾기 위해 뉴스타파에 녹음파일을 제공했다.  
뉴스타파는 손련화 부부의 20년 동업자이자 해운대그랜드호텔의 대표이사를 지낸 김 모 씨에 주목했다. 김 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손련화 부부와 함께 (주)메르디안해운, (주)퍼시픽인터내셔날해운 등의 무역회사를 운영했고 손련화 부부가 호텔을 인수한 지난 2007년 12월부터는 4년간 호텔의 대표를 맡았다. 그만큼 김 씨는 누구보다 손 씨 부부의 한국 사업을 잘 알고 있던 인물이다. 그러던 김 씨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고, 2014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뉴스타파는 우여곡절 끝에 김 씨의 유족을 만나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속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김 씨의 유족은 "김 씨가 목숨을 끊은 이유를 알지 못해 수년 동안 고통을 받아왔다"면서 "진실을 찾아달라"며 뉴스타파에 녹음파일 제공했다. 10여 개의 통화 녹음은 지난 2013년과 2014년, 김 씨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던 시기에 저장된 파일들이다.
뉴스타파는 김 씨가 남긴 이 녹음파일이 이른바 ‘다잉 메시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공개를 결정했다. 다잉 메시지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을 지목하기 위해 남기는 죽기 직전의 전언을 말한다. 물론 김 씨가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했던 김 씨의 육성에 손련화 부부가 한국에서 벌인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비유다.

20년 동업자의 육성 "손련화가 페이퍼컴퍼니 불법자금 관리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4년 3월 검찰 조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운대그랜드 호텔 전 대표 김 모 씨가 남긴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  
녹음파일 속 김 씨는 호텔 대표를 지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호텔 인수 직후인 2008년 3월 수사당국이 호텔 자금의 출처를 살펴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 씨는 “호텔 인수 자금은 러시아 마피아 자금이 아니다”라며 보도를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5년 반 뒤 녹음된 녹음 파일에서, 김 씨는 "나는 손련화를 도와준 죄 밖에 없다", "손련화 부부의 죄가 더 크다"는 등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2013년 10월에 저장된 통화 파일에서, 김 씨는 호텔 주거래 은행 직원에게 2007년 호텔 인수 당시 홍콩에 있던 자금을 국내로 보낸 사람은 손련화 씨였다고 털어놨다. 
김 씨 : 실질적으로 옵티마에서 돈을 찾은 게 손 사장이고, 그 돈 찾아와 가지고 나한테 갖고 와서 호텔 매입하는데 돈을 투입한 건 맞아요.
호텔 주거래 은행 담당자: 그때 손 사장님이 돈을 찾아줬어요?
김 씨 : 그걸 누가 찾겠어요. 옵티마 계좌를 내가 관리합니까? 그 홍콩 계좌 전부 다. 손 사장이 관리하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는데...(중략)(경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나는 이제 그건 모르겠다. 옵티마가 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옵티마 난 모른다. 이 얘기의 뜻은 옵티마가 세르게이 거라는 얘기를 내가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계속 모른다. 모른다...
호텔 주거래 은행담당자: 옵티마가 누구 건데요?
김 씨: 세르게이 거 아니에요? 페이퍼컴퍼니예요. 국세청에는 다 나와있어요.

해운대그랜드호텔 전 대표 김 씨가 남긴 통화 파일(2013. 10. 01)
뉴스타파는 지난 보도에서 2007년 호텔 매입 당시 피지엠인터내셔널이라는 육류수입업체의 법인 통장에 268억 원이 들어와 7분만에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이 268억 원을 보낸 곳은 허 세르게이 일당 중 한 명이 1인 주주로 있는 ‘옵티마’라는 이름의 홍콩 페이퍼컴퍼니였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실제로 이 업체 통장에 268억 원이 들어왔다 7분만에 빠져 나간 바로 다음 날인 2007년 12월 28일에 호텔 인수 계약이 이뤄졌다. 바로 그 ‘옵티마’의 계좌를 관리한 게 손련화 씨였고, 호텔 인수자금도 손련화 씨가 직접 움직였다는 게 숨진 김 씨의 증언이다. 손련화 부부가 불법 자금 세탁의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김 씨의 육성도 남았다. 
‘이렇게, 이렇게 경찰 조사가 됐으니 호텔 변호사를 보내서 자, 어떻게 입을 맞추면 좋을지 서로가 피해 안 가게끔 하자’라고 내가 누누이 얘기를 했어요. 근데 혼자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나 혼자. 그럼 마음대로 해라. 입을 맞추기 싫은가 보다. 내가 생각할 때는 세르게이 하고 손 사장이 자기네들 빠져 나가려고 나한테 다 떠미는 것 같아요. 

해운대그랜드호텔 전 대표 김 씨가 남긴 통화 파일(2013. 10. 01)
그러면서, 김 씨는 “자신은 업무상 도와준 죄밖에 없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결국 돈의 실질적인 주인인 허 세르게이와 손련화 부부”라고 강조했다. 
나는 업무상 도와준 것에 대해서 잠깐의 처벌을 받을 수 있겠지만…어쨌든 돈의 최종 목적지는 세르게이 하고 손 사장이 가져갔기 때문에 그 사람들 죄가 더 크지. 내가 죄가 더 크진 않아요.

해운대그랜드호텔 전 대표 김 씨가 남긴 통화 파일(2013. 10. 01)
검찰 수사를 받다 숨진 김 씨의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는 결국,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부산지검은 손련화 씨와 허 세르게이 부부의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만 전해왔다. 

손련화, 세무조사 확대 막으려 세무공무원에게 1억 5천만 원 뇌물

해운대 그랜드 호텔 전 대표인 손련화 씨의 약식결정문에는 손련화 씨가 세무공무원에게 1억 5천만 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김 씨의 생전 녹음 파일에는 '서대문 세무서 사건'이라는 새로운 사건이 등장했다. 뉴스타파는 김 씨가 녹취파일에서 언급한 이른바 ‘서대문 세무서 사건’을 추적했다. 손련화 씨의 자금 세탁에 관여한 육류 수입업체 대표 주 모 씨는 이 서대문 세무서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손련화로부터 돈을 받아 세무공무원에게 전달한 '운반책'이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우여곡절 끝에 손련화 씨가 세무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적시된, 부산지방법원의 약식 결정문(2015년 4월)을 입수했다. 이 결정문의 기초 사실에는 손련화 씨의 남편 허 세르게이가 수백억 원대의 호텔 인수 자금을 불법으로 들여온 사실이 그대로 적시돼 있다. 호텔 전 대표였던 김 씨가 남긴 통화 파일의 주요 대목이 이 법원 결정문에서 그대로 뒷받침됐다. 손련화 측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지난 해 9월 뉴스타파 보도의 해당 부분 역시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피고인의 남편 허 세르게이는 2007년 12월 경, 러시아에서 가지고 있던 자산 중 일부인 268억원을 모 회사를 통해 러시아에 육류를 수출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국내로 반입해 호텔 인수자금으로 사용했다. (중략) 2004년경부터 2007년 경까지 많은 자산을 같은 방법으로 국내로 반입했고, 2011년 경 세무조사를 받게 되었다. 

손련화 뇌물공여 사건  부산지방법원 약식결정문(2015.4)
손련화 부부는 해운대그랜드 호텔을 인수하기 전인 2000년대 초부터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건물과 토지는 물론 해운대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하우스까지 사들였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의 정점이 2007년 12월에 이루어진 호텔 인수였다. 호텔 인수대금은 무려 1,020억 원이었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 천문학적인 부동산 매입 자금들을 결국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감시망에 불법 자금 반입이 포착됐다. 결정문에 따르면 손련화 씨는 남편 허 세르게이에게까지 세무조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 씨를 통해 세무 공무원에게 뇌물 1억 5천만 원을 줬다.  
피고인은 세무공무원으로부터 제대로 소명되지 않으면 남편에게까지 세무조사를 확대하겠다는 말을 듣고 세무공무원에게 뇌물 공여하기로 마음 먹었다. 주 씨는 5만원권으로 현금 1억 5천만원을 종이쇼핑백에 담아 세무공무원에게 전달했다. 

손련화 뇌물공여 사건  부산지방법원 약식결정문(2015.4)
뉴스타파는 뇌물을 받은 전직 세무공무원 김 씨와 어렵게 통화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김 씨는 당시 세무조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돈이 몇십억이 세르게이 회사로 들어가더라고요. '왜 돈을 받았냐', '이걸 소명을 해라', '대금이면 대금이라는 증빙을 다 해라'고 했죠. 무슨 거래대금이라고 하는데 러시아 것을 말도 안 되는 걸 가져왔더라고요. 저는 일주일만에 바로, 세금 8억원을 고지했죠. 세금 8억원을 고지하고 추가조사를 더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과정에서 돈 얘기가 나왔습니다. 
손련화 씨가 돈 얘기를 먼저 꺼냈습니다. ‘돈을 주겠다, 준비하겠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전부터 사실 마음은 흔들렸죠. 사실 너무 큰 금액이고, 내가 직접 돌려줬다하더라도, 내가 실형을 살 수도 있고,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돌려줬습니다. 

[김 씨 / 뇌물 수수 전직 세무공무원]
전직 세무공무원 김 씨는 받은 돈을 다음날 돌려줬지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뇌물을 전달한 육류업체 대표 주 모 씨는 세무공무원을 소개하고 다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손련화 씨는 세무공무원에게 1억 5천만 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2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졌다. 

검찰 "호텔 고의 적자 혐의...손련화 지명수배"

검찰이 해운대그랜드호텔 노조에 통보한 불기소 통지문에는 손련화가 폐업을 위해 고의 적자를 낸 혐의가 적시되어 있다. 
해운대그랜드호텔은 지난 2019년 12월 문을 닫았다. 호텔 노동조합은 허 세르게이 부부가 고의로 적자를 내고 호텔을 폐업했다며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이와 함께 이들이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3월,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고발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최근 고발인측인 호텔 노조에 통지한 불기소결정서에 따르면, 손련화 씨는 배임 혐의로 지명 수배된 사실이 확인된다. 이 결정서에는 손 씨의 피의사실로 “호텔 매도명분을 쌓고 노조원들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여 호텔 매도를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적자 운영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적시돼있다. 교체 필요가 없는 엘리베이터 10대를 일부러 교체했고, 호텔 내 일부 상가를 일부러 공실로 방치해 임대료 손실을 내는 등 회사에 11억원의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손련화와 남편인 허 세르게이, 손 씨 딸인 허 모 씨가 호텔에 출근하지 않았음에도 월급을 가져간 업무상 횡령 혐의도 적용했다. 그럼에도 이들을 불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현재 이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손련화 부부는 현재 해외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9월 보도에서 손련화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법무부의 국적 취득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뉴스타파는 최근 법무부로부터 시험지 사전 유출 의혹과 관련해 "시험지를 유출한 법무부 직원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졌지만 손련화 씨의 경우 해외로 출국한 뒤 입국하지 않아 추가 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손련화 측 변호인에게 새롭게 확인된 수백억 원대 불법 자금 유입과 세무공무원 뇌물 등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해운대그랜드호텔은 지난해 3월, 부동산개발회사 엠디엠플러스에 매각됐다. 매각대금은 2480억 원으로 손련화 부부가 12년 여만에 거둬들인 시세 차익은 1300억 원이 넘는다. 문을 닫은 지 2년 가까운 현재, 해운대그랜드호텔 건물은 현재 내부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제작진
촬영기자신영철
편집오세현
CG 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