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래

2014년 05월 01일 14시 30분

2009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비행기 추락사고. 급작스런 추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 155명이 전원 구출되어 소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되었는데 언론들은 주로 침착하게 대응했던 기장을 ‘영웅’이라며 추켜 세웠다.

하지만 당시 승객 전원이 구출될 수 있었던 건 단지 기장의 침착한 대응 때문 만은 아니었다. 추락 후 3분 만에 현장에 헬기와 구조선을 도착시켰던 뉴욕항만청의 신속한 재난 대응 시스템이 이 기적을 만들어 낸 구조적 요인이었다. 뉴욕항만청은 사고가 발생하자 상부에 보고하고 승인 받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구조대를 투입했고, 결국 비행기 날개 위에서 두려움에 떨던 승객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조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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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난대응 시스템은 ‘현장 중심’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9.11 테러 당시 현장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구조 시스템의 경험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재난이 발생한 후 피해자들을 살릴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즉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현장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대응을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콘트롤 타워는 현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승인을 하는 상부 기관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고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다양한 부처 간의 혼선을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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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은 ‘현장 중심’ 원칙도, 현장을 최대한 지원하는 ‘콘트롤 타워’의 존재도 없이 그야말로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사고 신고를 받은 지 무려 11분이 지나서야 세월호와 첫 교신을 하는가 하면, 해경 경비정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신고를 받은 후 무려 40여 분이 지나서였다. 가장 먼저 초기 대응을 해야 할 현장 관계자들이 현장을 파악하지도 장악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구조를 할 수 있었던 2시간 여의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고 만다.

정부는 안전행정부 중심의 대책본부를 수립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지난 2월부터 인적 재난 분야를 맡아 사실상 재난 대응 경험이 거의 없던 상태. 그러다 보니 안정적인 콘트롤타워 역할은 커녕 실종자와 사망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만다. 그에 더해 각 부처들이 각각의 대책본부를 마련하다 보니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할 상부 기관들만 즐비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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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을 전체적으로 조율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대통령. 하지만 대통령은 전체적인 조율보다 현장방문을 먼저 선택한다. 물론 대통령의 현장방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사고 초기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선 일반적인 상황과 달리 대통령을 맞이해야 하는 ‘의전’의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외의 경우 대통령은 사고 초기가 아닌 수습 단계에서 현장을 방문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외에도 대통령은 특공대 투입을 직접 지시하거나 태만한 공무원들을 엄벌하겠다는 등의 지나치게 미시적인 발언을 하는데, 이는 부처 간 혼선을 조율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해야 하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에 비해 매우 부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관료들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현장 상황보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더 비중을 두고 사고 대응을 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발언은 자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장에 대해 ‘살인과 같은 행태’라는 식의 매우 감정적인 비난을 했던 것은 이미 많은 외신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총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겠다고 발표하고 대통령은 사표를 사고 수습 후 수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 역시 정부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처럼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 골든타임은 커녕 시신조차 빠짐없이 건져 올릴 수 있을지 조차 의심이 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분노한 가족들은 청와대에 항의를 하겠다며 행진을 하지만 정부의 대응이란 사과와 위로가 아닌 경찰 병력으로 길을 막는 것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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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세월호 안에 있던 학생이 가족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얼마 전 공개됐다. 학생은 당연히 자신이 구조될 거라 믿고 제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따랐던 것. 잘못된 안내방송을 한 승무원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으나, 침몰 후 우왕좌왕하다 시간만 보낸 정부의 대응 역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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